onzk777 님이 작성하셨던 포스팅의 아카이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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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내용은 블로그에 작성한 글이라서 경어입니다. 반말 찍찍이 부담스러우신 분들은 자체 필터링 부탁드립니다 핳핳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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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테라리아(Terraria) 라는 게임에 푹 빠져 9일 동안 100시간에 걸쳐 플레이했다. 거의 식음을 전폐할 뻔 했으나 그녀의 보살핌 아래 먹을건 어느 정도 챙겨먹으면서 잠만 안자고 게임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테라리아에 대해 포스팅을 하려다가, 이 게임에 대해 조금 깊은 얘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본 글에서는 우선 테라리아가 담고 있고 여러 사람들에게 인식시킨 장르 "샌드박스(Sandbox)" 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가장 큰 이유는, 요즘 붐을 일으키고 있는 덕택에 사람들이 샌드박스에 대한 정의를 잘못 내리고 있기 때문이고 그런 왜곡된 시선이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머리 속에도 들어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철저히 사전적인 정의부터 시작하여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려 한다.
Sandbox. 어휘만 살펴봐도 모래 상자? 아주 가벼운 합성어이다. 애초에 샌드박스라는 장난감의 컨셉은 해변가 모래사장에서 출발했다. 샌드박스 장르의 게임을 즐기는 여러분의 모습은 흡사 아무것도 없는 해변의 모래사장에서 모래와 물 두 가지 재료만을 가지고 하루 종일 집에 들어올 줄 모르는 어린아이의 모습이다. 샌드박스는 어원대로 모래가 들어있는 상자를 말하고 있으며 이는 곧 방금 서술했듯 모래를 가지고 스스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 놀잇거리를 "만들어내는" 행위로 점철되는 놀이를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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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실제 "샌드박스" 놀이기구의 모습. 우리나라에서나 생소하지 서양권에서 볼 때 샌드박스라는 단어가 게임 장르로 취급됨에 있어 오해를 살 만한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간단히 놀이터 정도를 생각하면 될 듯 하다.
이를 게임 장르에 대입하여 생각해보면 몇 가지 떠오르는 요소가 있을 것이다. 글쓴이는 샌드박스 장르의 게임이 지니는, 그리고 마땅히 지녀야 할 요소에 대해 다음의 몇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었다.
- 가지고 놀 수 있는 "재료" 를 충분히 제공한다.
- 게임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요소를 플레이어가 재조립하거나 그 자체를 제작할 수 있어야 한다.
- 플레이어가 만든 모든 것은 스스로 분해할 수 있어야 한다.
- 제공되는 컨텐츠는 표면적인 역할 외에 조합과 활용을 통한 새로운 효과를 창궐해야 한다.
- 플레이는 유도될 수 있으나 동시에 강제되어선 안된다. (시스템적으로나 컨텐츠적으로나)
- 소모형 컨텐츠가 존재하는 것은 무방하나 만약 이를 모두 소모했을때 게임이 끝나선 안된다.[/list:u]
위 목록은 모래를 가지고 놀면서 아이들이 즐겼을 재미요소를 충족시키기 위한 조건들이다. 모래는 그 자체로 재료이며 모래밭은 아이들이 스스로 만들어낼 수도 있다. (큰 그릇을 가져와서 모래를 담으면 작은 모래밭이 되는 것이다.) 성을 쌓던 집을 짓던 땅굴을 파던 간에 이 모든 행위는 플레이어 스스로 무효화할 수 있으며 백지화할 수 있다. 재조립과 파괴, 창조의 연속으로 인해 모래밭에서 노는 행위는 실제 머리 속에서 이루어지는 창작행위에 대한 일말의 재현을 가능케 한다. 샌드박스 장르의 게임이 지니는 힘이란 이런 종류의 기대감에 속하는 것이 태반이다.
이러한 정의가 완료된 상태에서 무릇 사람들이 말하는 "샌드박스 게임" 이라는 것들을 살펴보자. 말도 안되는 것들이 여럿 있다. 당장 떠오르는 게임, GTA5와 엘더스크롤 시리즈. 이게 어딜 봐서 샌드박스 게임인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샌드박스형 게임" 은 특히 "자유도가 높은 게임" 이라는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주로 호도되어왔다.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행위가 폭 넓게 제공될 수록 샌드박스 게임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얻기가 쉬웠다.
[attachment=1]<!-- ia1 -->whatthesandbox..JPG<!-- ia1 -->[/attachment]
[그림.2] 오해가 깊은 경우 이런 오판을 할 수도 있다.
[그림.2] 의 답변글 작성자를 욕할 필요는 없다. 오해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고 장르라는 것은 특정한 지식적 제반사항으로 정의될 만큼 딱딱한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르란 소비자가 만들어낸 제품 구분자일 뿐이고 상품을 제공하는 입장에서는 유저들이 만들어내는 장르라는 칸막이를 적절히 이용만 하면 된다. (혹은 파괴하거나)
단, 위 경우에서 걱정되는건 샌드박스라는 장르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특색이 "자유도가 높은 게임" 이라는 쉬운 오해로 인해 본래의 컨셉과 재미요소를 망각시키고 다른 장르에 흡수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즉, 위 작성자가 가진 오해는 전적으로 기존의 상품 제공자(게임개발, 유통업자)가 말도 안되는 게임을 샌드박스라는 이름으로 포장함으로써 발생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잘못된 글쓰기의 예 : 혼자, 게임 속 세계를 즐긴다 '샌드박스' 게임 인기(게임동아) - http://game.donga.com/37574/
[attachment=0]<!-- ia0 -->fuck.JPG<!-- ia0 -->[/attachment]
[그림.3] 위 기사 일부 발췌. 기가 찰 노릇이다.
포용력을 십분 발휘해서, GTA5 를 살펴보자. 주변에 걸어다니는 AI 들이 모래인가? 혹은 도로를 지나다니면서 날 잡아잡숴 하고 있는 멋진 차량들이 모래인가? "상호작용을 한다" 라는 조건이 샌드박스의 조건으로 탈바꿈할 수는 없다. 상호작용은 게임이라는 컨텐츠 자체가 가진 특성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NPC를 죽이고 차를 훔쳐도 게임에 큰 영향을 안주니까" 샌드박스인가? 위에서 글쓴이가 작성한 샌드박스의 어원과 정의를 읽은 여러분이라면 혀를 찰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는 메이저 신문사에서도 저런 잘못된 기사를 남발하면서 이른 바 "해외에서 물 건너 넘어온 신조어" 에 거품을 물고 달려들기 때문에, 해외 사정에 둔감한 일반 게이머들의 눈을 가리고 마케팅의 호구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옛부터 서양 문물에 약한 우리들이라곤 하지만, 이 처럼 그야말로 "새로운 개념" 을 들고 왔음에도 기존 장르와 짬뽕시켜 "더 세련되고 멋진" 정도로만 해석해버리는 참상을 이제는 멈춰야 한다.
게임의 "장르" 라는 것은 유저가 정의하는 것이다. 개발자가 "우리 게임은 XXX장르야" 라고 말하는 것은, "XXX장르를 좋아하는 유저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요소로 무장한 게임이어야 해" 라는 뜻이다. 개발자가 스스로 목표로 세운 "장르" 의 이름에 갇혀 허우적댈 필요가 없듯, "샌드박스" 라는 이름이 가진 여러 요소들을 대한민국 게임 유저들이 "자유도 높은 GTA5 같은 게임" 으로 오해한다고 해서 그들을 비난하거나 배척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실제로 전혀 다른 개념을 가진 어휘에 대해 "요즘 유행한다" 라는 이유만으로 의도적인 오용을 일삼는 것은, 그럴 의도가 전혀 없는 일반 게이머들에게 조차도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위험한 행위이므로 자제해야 한다. 더불어. 이 글을 읽는 몇 안될 여러분만큼은 샌드박스라는 다소 신비한 게임 장르가 가지는 본래의 재미요소를 다시 한 번 파악해볼 것을 권한다. 그리고 스스로 원했던 게임 스타일이 아니라면, 스스로 "샌드박스" 장르에 가졌던 판타지와 더불어 샌드박스라는 이름을 과감히 버리시라. 여러분이 좋아하는 종류의 게임은 이미 오픈월드, RPG 등의 수 많은 이름으로 포장되어 도처에 깔려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