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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DF 기본 공지 사항   2017년 11월 23일

      이전 (phpbb & Ruby를 쓰던) GDF에 올라왔던 공지사항들을 새 형식에 맞게 수정했습니다.   인벤과 GDF에 대하여 일단, 도메인 주소에서 보실 수 있듯, 이 포럼은 인벤 (inven.co.kr) 에서 제공하는 서버를 통해 돌아갑니다.
      그러나 회원 DB나 운영은 완전히 별개로 독립되어 있습니다. 
      즉 인벤 아이디로 GDF에 로긴하거나, GDF 아이디로 인벤에 로긴하는 등의 일은 불가능합니다. 
      아울러 운영진 또한 인벤직원이 아닙니다. 
      이는 즉 인벤과는 전혀 다른 운영정책을 취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행여나 이 포럼에서 생긴 일에 대한 문의나 요청이 인벤측으로 가거나, 
      반대로 인벤에 대한 문의 또는 요청을 이쪽에 주셔도 저희로서는 어떻게 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혹시나 도메인 주소 때문에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을까봐 부연합니다.   GDF의 취지 게임 개발자의 역할을 나누는 데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최근 한국의 게임업계에서는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아티스트 중심의 구분이 어느 정도 보편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실력 있는 프로그래머, 실력 있는 아티스트에 대한 평가 기준과 거기까지 도달하는 방법론이 비교적 뚜렷한 것과는 달리, 어떤 게임 디자이너가 유능한 디자이너이며 그렇게 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수많은 이견이 있을 뿐입니다. 물론 팀의 성향과 개발 여건에 따라 게임 디자이너에게 요구되는 소양은 타 직군에 비해 다양할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뽑아내는 창의력, 다른 파트와 유연하게 소통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문서를 만들어 내는 능력 등은 때로 가장 중요하게 손꼽히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게임 디자이너가 자신의 전문 분야로 삼아야 할 것은 무엇보다 '게임 디자인 능력' 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재미있는 게임을 디자인 해내는 능력이야말로 기본이자 필수입니다. 그러나 정작 '어떻게 해야 게임 디자인을 잘 할 수 있는지' 공부하는 길은 그리 만만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어떤 것이 잘한 게임 디자인인지' 판단하는 것부터도 어렵습니다. 물론 찾아보려 마음 먹는다면 생각보다 많은 정보 더미를 얻을 수야 있겠습니다만, 그것은 말 그대로 건초에서 바늘 찾기입니다. 인터넷만 뒤져본다고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 정보들은 누군가의 하드디스크에, 어딘가의 클라우드 서버에, 때로는 오직 인쇄된 문서로만 존재하니까요. 그리고 아마, 가장 중요한 정보들은 수많은 게임 디자이너들이 '내가 이 삽질을 다시 하나 봐라!' 하고 결심하는 그 순간의 뇌리에만 존재할 겁니다. 빠르게 변하는 현대 사회 중에도 최고의 속도를 자랑하는 이 업계에서는, 분명 많은 유저에게 재미를 주던 검증된 게임 매커니즘도 불과 몇 년 사이에 닳고 닳아 진부한 것이 되기 일쑤입니다. 또한 잘 만들어진 게임일수록 그 안의 모든 시스템이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어, 몇 개의 디자인 장치를 떼어내 다른 게임에 갖다 붙인다 해서 성공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습니다. 결국 이 모든 일은 게임 디자이너들에게 끊임없이 공부할 것을 요구합니다. 무얼 공부해야 할지,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는 사실 막막한 상황에서 말입니다. Game Design Forum은 그런 상황에 대한 하나의 방법론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곳에서 게임 디자인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내용을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멋진 게임 디자인 자료들을 찾아내어 공유하고 싶습니다. 자기만의 디자인 노하우나 경험담이 있다면 서로 나누고 싶습니다. 딱히 정답을 찾아내진 못하더라도, 서로 대화를 나누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배우는 뭔가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일을 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입니다. 그래서 이 곳은 무엇보다 "게임 디자인"에 대해 토론하고 대화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와 비슷한 취지로 만들어졌던 많은 커뮤니티들이 결국 게임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에서 게임 개발 전반, 산업 전반에 관한 이야기로 옮겨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게임 디자인 역시 게임 개발의 일부인 이상 그런 화제들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일단 이 곳에서 활동하시는 여러분께서 "GDF는 게임 디자인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곳" 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지해 주신다면 이 곳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일은 없지 않을까 합니다. 언제나 그 점 기억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켜주세요 – GDF 사용 규칙 이 포럼을 사용하기 위해 숙지하고, 지켜주셔야 할 규칙들입니다.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가능한한 최소화하려 노력했는데도 이정도네요. 
      이 규칙들을 의도적으로 또는 과하게 어겼다고 판단되면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도 있습니다. 
      잘 지켜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게시판의 용도를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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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외부의 글을 옮겨오는 등의 경우에 불가피하게 평어체로 작성된 글은 무방합니다.   3. '포럼처럼' 사용해주세요.
      이곳이 다른 게시판이 아니라 굳이 '포럼' 의 형태를 취하는 이유는, 포럼의 기능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음과 같은 내용들을 염두에 두시면 됩니다.
      하나의 이슈에 얽힌 이야기는 하나의 글타래로만 다룹니다. 
      새로운 글타래를 매번 새로 만드실 필요가 없습니다. 꼭 댓글 형태로 달아주세요. 
      댓글을 아주아주 길게 달 수도 있으니 부담없이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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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 MMOG의 집단서사

2 posts in this topic

Voosco 님이 작성하셨던 포스팅의 아카이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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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화제거리가 없어진 듯 하면 블로그에 예전에 썼던 글 퍼오기 시리즈 ... 의 최신판입니다 ^^;; 

일전에 인벤에 올라갔던 글입니다. 당시 일하던 팀을 대상으로 집단서사에 대해 설명하는 자료를 만들기 위해 일종의 초안으로 먼저 텍스트를 작성하고 있었는데 ... 자료를 완성하기 전에 마비노기2가 처음으로 발표되었죠. 들어맞는 부분이 많은 듯 하여 원래 작성 중이던 글에 마비2에 관련된 내용을 끼워넣었던 것인데, 결과적으로 글의 내용보다는 '마비2 너무 띄워주는거 아니냐' 라는 반응을 얻었었습니다 ^^;;

원래 목표는 아래 글의 마지막 부분에 집단서사가 왕성한 디자인과 그렇지 않은 디자인은 왜 차이가 나는걸까 ... 뭐 이런 내용까지 포함하는 것이었는데, 사정이 이러저러하게 돌아가다보니 거기까진 다 쓰지 못했었네요.


집단 서사는 지난 포스팅 (http://voosco.tumblr.com/post/31976272186/2) 에서 언급했던 ‘무작위적 만남’과 더불어, mmog에서만 가능한 여러 요소들 중 하나이다. 와우의 대히트는 안타깝게도 집단서사에는 그닥 좋지 못한 영향을 끼쳤지만, 최근 길드워즈2가 필드 플레이를 멋지게 만들어내면서 다시 부활하는 느낌이다. 그럼 집단서사가 뭘까.

집단서사라는 용어가 왠지 낯익어서 혹시 다른 분야에서 쓰는 용어가 아닐까하고 구글링을 해봤는데, ‘집단설사’는 나오지만 집단서사로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더라. 네이버에 물어보니 집단서사시라고 나오는데 이건 서사와는 좀 다른 개념이고 단어 자체도 미묘하게 다르고해서 그냥 집단서사라는 단어를 써서 설명하려고 한다.

플레이어 내러티브

우선 ‘플레이어 내러티브’라는 개념에 대해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게임에는 크게 두 가지의 내러티브가 동작한다. 첫번째는 ‘게임 내러티브’ 이다. 게임 내러티브는 게임을 만든 이들에 의해 플레이어에게 제공되는 내러티브로, 우리가 간단히 ‘스토리’ 라고 말하는 그런 것이다. 용자가 나서서 악당이 잡아간 공주를 구출하거나, 부조리한 시스템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가 되어 시스템의 부당한부분을 파괴하거나 전복하고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사회를 선사한다거나, 생물학적 인류를 위협하는 기계공학적 리퍼들로부터 은하계를 구하는 등의 이야기들.

두번째는 플레이어 내러티브이다. 게임을 만든 이들의 의도와 관계가 있을 수는 있겠으나, 좀더 주관적인 경험과 관계가 깊다. 파판5의 최종보스를 만나러 가는 길에는 2-3시간의 플레이타임 동안 세이브 포인트가 없다. 그래서 플레이어가 중간에 죽거나 최종보스에게 죽을 경우, 2-3시간에 달하는 던전을 다시 돌파해야만 한다. 최종 보스를 잡기 직전 안타까운 실수로 파티가 전멸한 플레이어에게 이 전멸은 무척 극적인 에피소드가 되며, 이 에피소드 자체가 바로 플레이어 내러티브이다. 아니면 ‘벨라스트라자를 잡다가 3번탱이 불타는 아드레날린을 본진에서 터뜨리는 바람에 공대 전멸했어 ㅋㅋㅋ’ 라던가, ‘투기장에서 내 피가 바닥인데 상대 사제가 나 잡으려고 오면서 자기한테 보호막을 거는거야. 그래서 주문훔치기로 잽싸게 보막을 훔치는 순간, 돚거가 바로 매복 들어왔지만 보막때메 살았음. 결국 그 판은 무승부로 갔지’ 라던가, ‘아카리를 빨피로 만들었는데 이게 W 쓰고 숨는거야. 평타 한대면 잡는데 당연히 옆에서 기다렸지. 근데 안개가 사라지니까 쉔이랑 같이 나타나네? 알고보니 W 쓴동안 쉔이 궁쓰고 아카리에게 날아왔더라고. 다 잡은 아카리 그래서 놓치고 나는 죽음 ㅜㅜ’ 등등. 플레이어 내러티브는 게임의 장르와 관계없이 대부분의 게임들에 존재한다. 테트리스나 애니팡과 같은 게임에도 물론이다. 서사란 반드시 기승전결이 존재하거나 이입할 수 있는 아바타가 있어야만 생기는 것은 아님을 잊지말자. 길다란 블럭 하나만 나오면 이 스테이지를 클리어할 수 있었는데 수십번의 블럭이 내려오는 동안 막대블럭 하나가 안나와서 게임 오버 직전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위기를 돌파한 경험 등도 훌륭한 플레이어 내러티브이다.

집단 서사

집단서사는 플레이어 내러티브에 한 가지 조건이 더 추가된다. 바로 ‘mmog에서만 가능한 규모의 인원이 참여’하는 것이 그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혹자는 감탄하고 혹자는 비웃는 ‘바츠 해방전쟁’이 있다. 리니지2의 특정한 서버에서 수일 또는 수개월에 걸쳐 막대한 숫자의 플레이어의 참여했던 이 사건은 나중에 바츠 해방전쟁이라 불리우게 될 큰 규모의 플레이어 내러티브를 만들어냈으며, 저명하신 학자나으리조차 그 규모와 양상에 감탄하게 만들었었다. 오리지널 와우시절 수시간에 걸쳐 카자크를 풀링해서 아이언 포지를 아비규환으로 만들었던 에피소드, 힐스브래드 구릉지 타렌밀농장에서 자주 벌어졌던 집단전투나 알터랙 전장이 처음 나왔을 당시 하나의 방이 열려 무려 3박 4일간 계속되었던 일, (과장되었다고는 하지만) 이브 온라인에서 BoB 얼라이언스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사건 등이 바로 좋은 예이다. 아래 동영상은 실제 있었던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동영상이다.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nzFzxA9ajnc#!

이미 낯익은 일들에 개념의 틀을 씌우고 이름을 넣어봤을 뿐이다. 그닥 복잡할 것 없다. mmog에서만 동원 가능한 규모의 인원 참여와, 이들이 만들어내는 플레이어 내러티브. 이걸 나는 mmog의 집단서사라고 부른다. 한편 와우의 경우 내가 예로 든 케이스가 모두 오리지널 시절이라는 점을 상기하자. 오리지널 때의 와우는 ‘그나마’ mmog스러운 구석이 비교적 많은 편이었다. 적어도 거듭되는 확장팩들에 비하면 그랬다. 그러나 불타는 성전 이후 와우가 달려간 길은 mmog에서 멀어지는 쪽이었고, 당연하게도 mmog고유의 요소인 집단서사도 서서히 사라져갔다.

근데 언뜻보기에 eSports 또한 집단서사와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개별 경기마다 풍성하게 터져나오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은 물론이거니와, 선수 개인의 이스포츠 커리어 자체가 멋진 서사이기도 하다. 이를 즐기는 사람들의 숫자는 ‘mmog에서 동원 가능한 규모의 인원’ 이라는건 같잖을 정도로 엄청나다. 그럼 이것도 집단서사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이건 집단서사가 mmog 고유의 요소라는 점이 깨지는 것 아닌가? 아쉽지만 이스포츠의 서사에는 한 가지 빠진 부분이 있다. ‘참여’가 그것이다. 압도적 다수의 관객들은 선수와 해설자들이 엮어내는 플레이어 내러티브를 ‘감상하고 즐기는’ 위치에 있을 뿐이며, 여기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거나 그 일부가 될 수 없다. 우리가 프로야구 경기에 열광하면서 스스로를 야구선수라고 말하지는 않듯, 이스포츠 또한 그렇다. 내가 이스포츠의 중요 요소로 ‘해설자’를 거론했음을 기억하자. 아래에서 좀더 자세하게 설명하겠다.

집단서사의 멋진 점

우리가 흔히 말하는 ‘스케일’은 단순히 게임의 아트웍에서 나오는게 아니다. 역사의 어떤 중요한 순간에 그 한복판에 서있었다는 점은 플레이어에게 아주 강렬한 경험을 준다. 그리고 그런 스케일의 감각이 어떤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로 만들어낸 흐름이라는 점은 이를 더더욱 잊을 수 없게 만든다. 지금도 바츠 해방전쟁이 거론되는 곳에 누군가 나타나 ‘나도 내복단의 한 명이었지’ 라고 말하며 뿌듯한 마음을 내비치곤 하는건 그  스케일감이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기에 참여했던 이들의 가슴에 각인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즉 집단서사는 누군가에게 전해듣거나, 스샷으로 보거나, 유튜브를 돌려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임장감과 스케일감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경험하게 한다. EPL에 진출한 박지성이 멘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경기하며 당당하게 주전으로 출전하여 간지 쩌는 골을 넣는 장면을 집에서 TV로 볼때, 당신은 입에 담았던 맥주를 화면에 뿜으면서 일어나 고래고래 소리지르다가 방에서 나온 다른 가족들에게 타박받는다. 그만큼 당신은 열광한다. 그런데 조기 축구 또는 (군필자들의 경우) 전투 축구에서 내가 차넣은 골이 네트를 흔들 때 또한, 박지성의 경우만큼이나 당신은 열광한다. 열광하는건 같지만 아쉽게도 두 골은 비교하기 힘들 정도의 퀄리티 차이가 있다. 전자는 세계최정상급 선수의 그야말로 간지가 터져나가는 골이고, 당신이 넣은 골은 배나온 아저씨들 (또는 작업에 찌든 쫄따구들) 데리고 설렁설렁 뛰어다니다가 작전이고 지랄이고 없이 마구잡이로 공을 주고받던 중 우연찮게 터진 골이다. 둘은 같은 골이 아니다. 현격한 퀄리티의 차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당신이 ‘어디에 더 열광하는가’를 따져본다면, 판단하기 어렵다. 둘 모두 당신에게 큰 희열과 기쁨을 주며, 둘은 서로 갈래와 방향이 달라보인다. 보면서 열광하는 것과, 하면서 열광하는건 확실히 다르다. 그리고 집단서사는 이들 중 ‘하면서 열광하는’ 쪽에 조금 더 가깝다. 또한 다양한 게임 장르들 중 오로지 mmog에서만 가능하다.

집단서사의 2번째 단계와 곤란한 점

한편, 집단서사에는 곤란한 부분이 있다. ‘거대한 규모’의 플레이어 내러티브라는 점은 집단서사에 강하게 매력을 부여하며 유니크하게 만들어주지만, 반대로 그렇기에 곤란해지는 부분도 있다.  집단 서사는 여러 사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여러가지 상황에 얽히면서 벌어지는 일종의 거대한 흐름이다. 그렇기에 게임의 여러 국면에 동시다발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일개 플레이어 입장으로는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다. 아이언 포지에서 평화롭게 대장질을 하던 플레이어는 느닷없이 나타난 카자크에게 밟혀죽으면서도 왜 카자크가 여기에 있는지 영문을 알 수가 없다. 3박 4일간 펼쳐진 알터랙 전장의 혈투에 당신도 분명 참여하긴 했으나, 이 기간내내 참여하긴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으며, 설사 실제로 그렇게 했다하더라도 길게 늘어진 알방의 어떤 지역에서 누가 퀘스트를 열심히 해서 그리핀을 불러냈는지, 앞쪽의 전선이 왜 밀리고 있는건지, 드렉타르 치러 간 도적 게릴라들이 어떻게 전멸했는지를 알긴 어렵다. 대부분의 규모가 큰 집단서사는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들은 내용을 종합해야만 전체적인 상을 파악하는게 가능하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데, 구슬들이 아무리 넘쳐나도 꿰어줄 사람이 없다면 의미없이 흘려보낼 수 밖에 없다. 누군가 나서서 전체상을 파악하고 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어딘가 보기 쉬운 곳에 걸어줄 때 비로소 집단서사는 빛이 난다. 즉 1) 전체상을 파악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며 2) 이를 널리 알려주는 일종의 전파작업 또한 수반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작업은 사실상 개개인의 플레이어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주길 바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무리 멋진 에피소드라도 정리하는 이가 없다면 전해지지도 않는다. 일종의 게임 내 음유시인이 필요한데, 언제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집단서사가 필요로 하는 다른 장치들

윗 단락에서, 집단 서사의 두 가지 과정을 언급했다. 집단서사를 자아내고 만들어내는 직접 참여 활동과, 이를 향유하는 활동이다. 지금까지 내가 언급한 것은 모두 전자의 활동이었다. 그러나 후자의 활동도 집단 서사에서 빼놓을 수는 없다. 이는 사실상 이스포츠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스포츠의 경우 ‘해설자’의 존재가 핵심적인 기능을 대행해준다. 단 한 판의 경기에 대해서도 각 선수의 히스토리를 읊어주고, (연출된 것이든 아니든) 서로간의 은원관계나 전략상의 강점과 약점을 짚어주고, 상성을 고려한 구도를 보여주며, 경기의 전체적인 흐름에서 극적인 부분을 정확하게 집어내어 강조해준다. 관람객은 이런 해설자의 풍부하고 흥미진진한 해설을 통해서 경기의 흐름에 좀더 밀착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mmog의 집단서사에는 이런 해설자의 역할을 고정적으로 해주는 이가 없다. 개별 플레이어들의 자발적인 활동에 기대야만 하는 구조이다. 다시말해 이런걸 해주는 인게임 장치가 없다.

그렇기에 집단서사의 향유는 게임 바깥의 활동에 더 강하게 의존한다. 게임 내에서 지난 ‘에픽 배틀’의 전개와 결과를 외치기창으로 노닥거리는 사람은 없다. 있다고 해도 도배하지 말라는 타박을 듣고 곧 잠잠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각종 게임 관련 커뮤니티에 이 에픽 배틀의 진행 양상과 과정을 스샷과 함께 잘 정리해서 올려놓으면, 조회수 터져나가며 단박에 베스트 게시물 내지는 금주의 게시물 등으로 올라갈 수 있다.

즉 다양한 게임 외적 장치들이 집단 서사를 보조하며, 집단 서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와우인벤의 사건사고 게시판이 좋은 예에 속한다. 모든 게임에 대해 타성적으로 만들곤 했던 서버별 게시판은, 각 서버에 밀착된 내용들로 인해 개별 플레이어들에게 좀더 가까운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여러 화제들이 더 넓은 커뮤니티 공간에서 공유되지 못하고 쉽게 스러져갈 수 밖에 없다는 한계도 있다. 와우인벤이 (좀 오래전에 만든 것으로 기억하지만) 만든 사건사고 게시판은 여러 서버에서 생겼던 이슈들을 한데 모아 볼 수 있게 함으로써 개별 이슈들의 수명과 폭발력을 비약적으로 늘리는데 성공했다. 물론 누군가는 계속되는 이슈의 발생과 발전없는 논의에 환멸을 느끼기도 했지만, 이 게시판은 집단 서사에 그것만을 위한 별도의 공간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고 본다.

집단서사의 ‘현상’은 분명 게임 내에서 발생하며, 게임 플레이에 대해 강하게 의존한다. 그러나 집단서사를 ‘즐기는 과정’은 결코 인게임 플레이에서 찾아보기 어려우며, 거의 대부분의 경우 게임 외적인 활동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 아울러 여기에는 플레이어들의 자발적 참여 (집단 서사를 만들어내는 일에 대한 참여가 아니라, 집단 서사를 발굴하고 전파하는 일에의 참여) 가 필수적이다. 즉 집단서사가 멋진 컨텐츠로 완성되기 위해서는 여러 복잡한 절차와 까다로운 조건들이 충족되어야만 한다. 인기가 있었건 없었건 우리나라에 서비스했던 mmog는 아마도 수백종이 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공통으로 알고 있는’ 집단 서사 에피소드의 수는 그닥 많지 않다. 이건 집단 서사가 복잡한 절차와 까다로운 조건들을 모두 충족할 때만 만개하기 때문이다.

Zerasion님이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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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올만한 예전 글이 없는 늅늅은 늅늅하고 웁니다.. ;ㅁ;

마비2 공개 프레젠테이션 발표 직후에 이런 글이 올라와서 "정말 빠르다 우왕!"했는데 미리 쓰고 계셨던 거군요! ㅎㅎ

트로피 챌린지인 현재 각 게임들의 업적이라는 시스템을 플레이어 네러티브의 레코딩 용으로 변환한 게임일지 형식의 시스템으로 구현하는 것 만으로도 1차적인 자기 만족은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집단서사와 같은 경우, 운영진이 직접 데이터를 수집하고 상황을 모니터링 해 중계해주는 모 대형 게임들(리니지나 마비노기나 이브온라인 쯤..?)이 아니고서는 시스템이 저 부분을 흡수하는 경우는 아직까지는 흔치 않은 것 같아요. 월간 에린, 또는 분기 간행물 EVEon(지금은 전자도서로 전환)같은 게 참 좋았는데 누군가의 할당된 업무라는 게 장단이 있는 것 같구요..

마비노기2 발표 이전에 파이어폴의 경우가 관전을 시스템으로 지원한다고 했었는데 현재 진행중인 전투를 관람하는 도중에 실시간으로 일시정지, 되돌려보기도 되고 그러면서 동시에 프리 카메라를 지원한다는 게 좀 파격적이더군요. 역시 게임의 힘! 같은 느낌..

예전에 썬온라인에서 필드 소유권 쟁탈전(개발진들에게 "지역점령전"이라고 불렀던 컨텐츠)를 개발할 때 PD님과 기획팀장님과 웹디자이너에게 간곡히 졸라서 점령 현황과 히스토리 로그를 활용해 웹에서 점령의 역사를 리스트로 보여주는 기능 넣어달라고 했었는데 업무 우선순위가 밀리고 담당자가 퇴사하면서 아직까지도 구현되지 않고 있다는 슬픈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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