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 MMOG에서 커뮤니티의 장치들. 파트3 : 파티

Zerasion
By Zerasion in Blue Board,
Voosco 님이 작성하셨던 포스팅의 아카이빙입니다. ---   우리나라에서 흔히 ‘파티’ 라고 부르는 장치를 북미에서는 주로 ‘그룹’이라고 부르곤 합니다. 파티라는 말을 아예 안쓰는건 아닌데 우리나라에서 파티를 그룹으로 부르는 빈도만큼이나 적게 쓰이는 듯 하더군요. 아무튼. 파티라는건 mmog의 초창기에는 없었습니다. 리니지1이나 울온같은 게임들이요. 이때 누군가와 어울린다는건 ‘그냥 몰려다니는’ 일이었죠. 종종 Friendly Fire 같은 일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었구요.
 
파티라는 개념을 명확하게 mmog에 박아넣은건 역시 에버퀘스트입니다. 여기에는 탱딜힐의 역할분화와 어그로 시스템의 도입이라는 게임 디자인의 혁신이 있었구요. EQ 이전에 파티 또는 그룹이라함은 ‘이미 알던 사람들끼리’ 라는 개념이 전제되었습니다. 길드원이든, 오프라인 친구이든, 게임 하다 우연찮게 만나 친분을 쌓은 사람이든, 어쨌든 ‘이미 알던 사람들끼리’ 몰려다니던가 파티라는 시스템을 이용하는게 일반적이었는데, EQ 이후로 파티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장치’로도 기능하게 됩니다. 플레이어들이 그런 목적으로 사용한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일들이 벌어졌다는거죠.
 
EQ의 파티 시스템이 불러온 이 변화는 꽤 중요한 지점이라고 봅니다. 이 파티 시스템 이전에 같은 mmog를 같은 서버에서 하는 사람들이 서로 알게되고 친근해지는 경로는 전적으로 우연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게임 시스템은 그저 그런 일이 벌어지면 좋겠다, 또는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 이후에 우리가 조치를 취해주겠다. (친구 리스트, 길드 결성 등) 는 입장이었는데, EQ부터는 낯선 사람들을 서로 묶어주는 강력한 장치가 생겨난 셈이거든요. 물론 이런 식으로 커뮤니티가 게임의 다른 기능적 요소와 강하게 묶이는 경우에 부작용으로는 기능이 커뮤니티를 압살해버리는 일들이 있겠죠. 사실 이런 유형의 파티 플레이 모델 후기에는 그런 일들이 빈번하기도 했구요. 이건 나중에 좀더 자세히 얘기하기로 하고 ... 초창기인 EQ에서는 파티를 통해 누군가 모르는 사람과 친해지는 일들이 꽤 비일비재했습니다. 여기에는 일전에도 이 포럼에서 언급했던 ‘캠핑 타입’과 ‘클리어 타입’의 플레이 패턴 상의 차이점도 어느정도 영향을 끼쳤다고 봅니다. 캠핑 타입에서 플레이어들은 한 자리에 죽치고 앉아 그 자리에서 스폰되는 몬스터들을 잡아죽입니다. EQ 이전 세대의 소위 ‘닥사’ 형 노가다를 파티로 한다는 것 외에는 그닥 차이가 없어요. 반복되는 사냥은 짧은 시간 내에 파티원들을 익숙해지게 만들고 그럼 이제 손이 놀기 시작하죠. 노는 손으로는 채팅을 하고, 그렇게 파티원들과 친해져갑니다. 그러나 클리어형에서는 그럴 시간이 없어요. 계속해서 앞으로 나가면서 던전을 클리어해나가야 하거든요. 손이 놀 시간이 없다는건 커뮤니케이션의 부재도 불러옵니다. 결국 캠핑 타입은 ‘게임이 주는 재미’는 좀 덜하고 커뮤니티의 재미가 들어갈 여지 (커뮤니티의 재미가 생겨난다. 라고 말할 수는 없겠죠) 가 생기는데 비해서, 클리어 타입에서는 ‘게임이 주는 재미’가 큰 대신 커뮤니티의 재미가 들어설 자리가 사라져버립니다.
 
이런 ‘커뮤니티의 재미가 들어설 자리가 사라져버리는’ 현상은 고전적 파티모델의 후기형이라 볼 수 있는 와우에 들어서면 선명하게 느껴지죠. 앞서 말했던 ‘커뮤니티가 게임의 다른 기능적 요소와 강하게 묶이는 경우에, 부작용으로 커뮤니티에 묶인 기능에 의해 커뮤니티가 압살된다’ 라는 말이 여기서 드러납니다. 사람들은 던전을 돌며 몬스터를 탱킹하고 딜하고 힐하느라 바빠 서로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어져요. mmog를 표방하고 나왔으나 mmog스러운 색이 많이 희석된 와우라는 게임의 특징은 이런 부분에서도 드러나는거라고 봅니다. 한편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서로 다른 사람들을 일종의 ‘도구’ 취급하는 경향도 생겨나요. 커뮤니티성의 탈색이죠. SNG 게임이 흥행하면서 사람들은 흔히 이 종류의 게임이 다른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기보다는 ‘게임 내 자원’으로 대한다고 비판하곤 하는데요, 이와 유사한 구도로 실질적으로 와우의 막공에서 서로가 서로를 대하는 모습은 그저 나 대신 탱하는 사람, 나 대신 딜하는 사람, 나 대신 힐하는 사람이지, 어떤 대화를 나눌만한 가치를 지닌 ‘개인’으로부터는 거리가 좀 멀어져 있음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EQ가 가졌던 커뮤니티의 가능성이 다른 요소에 의해 대체되고 나니 결국 큰 범주에서 SNG와 와우 사이에 일련의 공통점이 형성되기 시작하는거죠.
 
그래서 이런 사라진 커뮤니티의 가능성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고전적 파티플레이의 대체 모델들이 모색되기 시작 ... 한건 아닙니다 물론 ^^;; 커뮤니티적인 측면보다는 역할분담이 플레이어들에게 주는 스트레스 때문에 고전적 파티플레이 모델의 대안이 모색되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EQ할 때 파티원의 최대수는 8인이었고, 이 인원을 모두 모으는데 짧아도 10-20분, 길면 2시간까지도 시간이 소요되곤 했습니다. 빠진 포지션을 적절한 장비와 레벨의 플레이어를 찾아 메우는 시간이 그정도죠. 하루에 1-2시간쯤 게임 하는 플레이어들은 ‘이제 파티원이 다 모였으니 출발해보자구~’ 하는 순간 접속 종료해야하는 상황. 여기에는 각 클래스별 파티내에서의 역할이 극단적으로 갈리는 부분 – 대체요원을 찾기 어려워져요 - 과, 필요 파티원의 숫자 자체가 너무 많다는 점이 작용했습니다. 
 
와우는 이런 단점들을 해결하려고 크게 두 가지 조치를 취합니다. 첫번째는 파티원의 최대수를 5명으로 줄였습니다. 8명이던 EQ보다 사람 구하기가 더 쉬워지죠. 두번째는 모든 클래스의 하이브리드화 입니다. 즉 클래스 하나로 두 개 이상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아예 클래스를 짜넣은거죠. 경직된 클래스-파티역할 간의 관계에 유연성을 불어넣음으로써 사람 구하기를 좀더 쉽게 만들었습니다. 결과는 꽤 성공적이었다고 봅니다. EQ에 비해 파티 구하기가 훨씬 용이해진 것이 체감되는 수준이었죠. 이후에는 아예 던전 파인더를 만들어넣어서 크로스서버 구조의 자동 파티매칭까지 들어갔구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좀더 자세히 다루고 있으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읽어보세요.  게임 플레이의 관점에서 이게 발전적인 방향인 것은 확실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커뮤니티의 관점에서 이게 긍정적인 방향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이건 사실상 파티의 형태나 구조보다는 파티를 둘러싼 컨텐츠에 기인하는 측면이 좀더 크긴 하지만요. 앞서도 말씀드렸듯 EQ의 파티를 받아 개선한 와우의 파티는 파티 자체의 형태도 형태지만 파티플레이의 중심이 되는 컨텐츠의 구성에 있어서 캠핑보다 클리어 위주로 짜여졌기에 수다떨 시간이 없어지는 슬픔이 있었던거죠.  사실상 와우 이후의 게임들은 파티를 ‘게임플레이’ 측면에서만 주목하고, 커뮤니티를 위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부분으로는 많이 잊혀졌다고 봅니다. 대부분 파티플레이의 기능적 측면을 개선하는데 주안점을 두었지, 파티가 가지는 한시적인 커뮤니티로서의 입장에 대해서는 거의 고려하지 않는 듯 보이거든요.  이후 리프트 등에서 보였던 public group과 같은 과도적 파티형태를 거쳐 요새 길드워즈2나 파이어폴 등을 보면 일종의 open group 형태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에서 그 방향을 어림짐작해보자면, EQ의 파티가 좁고 깊은 형태였다면, 요새의 파티는 넓고 얕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굳이 파티라는 시스템으로 묶지 않는데다가 의식하지 않아도 파티 플레이가 이루어지기에 넓어졌다면, 그로인해 파티로 묶을 때의 대화랄지 친밀감? 같은건 그닥 찾아보기 어려워진 상황이죠. 물론 EQ에서 시작된 파티를 사용할 수도 있긴 합니다만 굳이 그러지 않아도 플레이에 크게 지장없이 만들어주니까요. 
   
전체적으로 파티는, 특히 EQ의 혁신과 더불어, 전투와 뗄래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커뮤니티의 다른 장치들에 비해 변화 시도랄지 발전 속도가 좀더 빠른 편입니다. 덕분에 글의 양이 꽤 많아졌지만, 일전에 말씀드렸다시피 다들 아실 법한 내용의 정리에 불과하다보니 뭔가 실속은 좀 없는 느낌이군요 ;; 여기까지 읽느라 수고들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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