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 MMOG에서 커뮤니티의 장치들. 파트4 : 진영

Zerasion
By Zerasion in Blue Board,
Voosco 님이 작성하셨던 포스팅의 아카이빙입니다. ---   전혀 주목받지 못하고 있음에도 시리즈가 계속 나오는 근성의 역작 'mmog에서 커뮤니티의 장치들' 파트4가 나왔습니다. 이전 부분들은 아래 링크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파트 4. 진영 이 시리즈에서 지금까지 다룬 커뮤니티 장치들은 대부분 미시적이거나, 미시적인 부분이 있는 장치들이었죠. 그러나 진영쯤 오면 굉장히 규모가 크고, 개별 플레이어들의 피부에 와닿는 커뮤니티적인 부분은 좀 적은 편입니다. 그럼에도 이 장치가 커뮤니티에 끼치는 영향력은 의외로 꽤 크다고 생각해요.  진영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시도했던 것은 DAoC로 알고 있습니다. 이 게임의 대규모 PvP는 RvR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데, 이는 Realm vs Realm 의 약자이고, 이때의 Realm은 즉 진영을 의미하죠. 이 진영이라는 개념은 당시로서는 굉장히 신선한 요소였고, 꽤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후 와우가 이 개념을 채택하면서 확실히, 굉장히, 널리 보편화되었죠. 진영은 대충 다음의 두 가지 요소로 넣을 수 있습니다.  진영 시스템의 구성 요소 첫째, 한 서버에서 복수의 진영에 캐릭터를 생성할 수 없습니다. 즉 어떤 서버에 처음 캐릭터를 만들 때 진영을 선택해야하고, 이 진영은 그 서버의 모든 캐릭터를 삭제하기 전까지는 바꿀 수 없습니다. 첩자질 (spying) 의 문제도 그렇고 소속감의 문제도 그렇고 여러모로 불가피한 장치였죠. 지금 와우는 이런 경계도 사라졌습니다만 그건 좀더 아래에서 논하기로 하겠습니다.  둘째, 서로 다른 진영에 속한 이들간의 커뮤니케이션은 제한됩니다. 와우는 채팅만, 다옥같은 경우는 아이디를 알아보기도 어렵게 되어있죠. 상대에 대한 개인적 감정의 문제를 최소화 하기 위한 장치이며, 개인적 감정을 집단적 감정의 문제로 치환해주는 꽤 좋은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DAoC의 경우에 더 그런데, 예를 들어 상대 진영의 누군가에게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한다면, 진영이 없는 다른 게임에서 이는 철저히 개인간의 문제입니다. 나라는 개인은 상대 아이디 뭐뭐라는 개인에게 감정을 품게 되는거죠. 이건 그닥 좋은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개인간의 은원이 돌고 돌면서 복잡한 문제들을 야기하게 되거든요. 어떤 류의 게임들에서는 이런 ‘감정으로 말미암은 은원의 순환’을 게임의 일부라고 보기도 하는 것 같지만 (대표적으로 리니지1 등의 게임들?) 저는 이게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건지 확신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그러나 DAoC 같은 게임에서는 이게 진영간의 갈등이라는 집단적 감정의 문제가 됩니다. 상대 진영의 누구라는 특정한 개인이 아니라, ‘상대 진영’ 자체에 대한 일종의 복수심? 같은걸 불태우게 되는게, 이쯤 오면 이건 게임 플레이의 일부라고 봐줄 수 있습니다.  결국 진영간 커뮤니케이션 제한을 통한 핵심적인 장점은 게임 플레이의 일부인 PvP를 통해 발생한 개별 플레이어들의 감정을 다시금 게임 플레이의 일부로 환원할 수 있다는 점이죠. PvP는 어떤 식으로든 플레이어에게 일종의 ‘동기’를 발생시킵니다. 진영이 없는 게임에서 이 동기는 안좋은 쪽으로 발달하거나 무의미하게 소진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영이 있는 게임에서는 이 동기가 좋은 쪽으로 발전하여 게임 플레이의 일부를 이루는 일종의 싸이클을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진영 시스템의 장점 진영 시스템의 장점이라면 뭐니뭐니해도 집단적 소속감을 부여하고 이를 통해 게임을 더 흥미로운 것으로 만들어준다는 점이 있겠죠. DAoC를 할 때 저렙인 제가 파티원들을 모아 어딘가에서 열렙을 하고 있으면, 어느순간 채팅창에 경고가 울립니다. ‘우리 영토가 공격받고 있음’ 이라는 메세지죠. 저는 저렙이기 때문에 나가봐야 순삭이라 렙업이나 하자고 맘먹고 눈 앞의 몹에 집중합니다. 그러나 제가 사냥하는 장소 근처를 고렙들이 줄지어 말타고 지나가면, 그들이 펄럭이는 망토가 그렇게 멋져보일 수가 없어요. 그들은 모두 국경지대로 우리 진영을 지키기 위해 출전하는 중이고, 이 모습을 보면 왠지 가슴이 두근댑니다. 현실에서는 애국심과는 거리가 먼 쿨시크한 납세자와 그 세금을 기반으로 한 공공 서비스 제공자로서만 자신과 국가의 포지션을 잡는 저지만 게임에서 이런 가슴 두근거림은 어쩔 수가 없더라구요. 와우에서도 비슷한 일은 많죠. 저렙인 내가 렙업하는데 누군가의 거듭되는 뒤치기로 화가 날 때. 화는 나지만 여전히 저는 저렙이고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서 미쳐버릴 듯 답답할 때. 지나가던 우리편 고렙이 아무 이유없이 저를 도와줍니다. 복수는 3배로 해야 제 맛이라며 한 시간이 넘도록 제 주변을 돌며 지켜주고 상대가 보이면 잔혹하게 눕혀버립니다. ‘같은 진영’ 이라는 것 이외엔 여기에 아무런 이유가 없어요. 그리고 그건 고렙과 저 사이를 강하게 묶어주는, 다른 게임에서는 찾아보기 드문 강력한 끈이죠.  진영 시스템의 단점 한편, 이런 진영 개념은 널리 알려진 중요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진영간의 밸런스 문제가 바로 그거죠. 이게 일단 시작되면 가속화되는건 순식간인데다가 해결하기도 몹시 어렵습니다. 와우의 2진영 구도는 물론이고 DAoC의 3진영 구도도 그렇습니다. 혹자는 3진영 구도에서라면 한 쪽이 두드러지게 강할 때 다른 두 진영이 연합해서 대응하는게 가능하므로 괜찮다고도 하던데, 저는 좀 회의적입니다. 북미 서버에서는 그런 의도가 그럭저럭 어떻게든 동작했다고 볼 수 있겠는데 ... 한국 들어오니 여지없더군요. 저는 한국의 DAoC에 서버가 2개 있던 시절에 플레이했었는데, 두 서버 모두 알비온의 압도적 강세였고, 이는 하이버니아와 미드가드가 연합을 하건 뭘 하건 상관없었습니다. 렐릭 3개는 언제나 알비온이 가지고 있었어요.  진영 시스템의 단점을 극복하려는 시도들 이런 진영 시스템의 밸런스에 내재된 위험성은 그나마 PvE에 관련된 문제들이라면 후대의 와우가 보여주었듯 인터서버 장치들을 이용해서 어떻게든 해결이 가능하지만, 대규모 PvP 에서는 이게 현실적으로 무척 어렵습니다. 오리지널의 와우는 ‘진영’ 이라는 개념을 어떻게든 유지하고 가져가려 노력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불타는 성전부터는 진영을 버리지는 않되 어떻게든 진영 시스템 본연의 효과 – 이 경우 DAoC가 노렸고 효과를 보았던 그 부분이겠죠 – 를 최소화하려 노력했다고 봅니다. 와우의 PvP가 대규모가 될 수 없었던건 서버나 클라이언트의 퍼포먼스 저하와 같은 기술적인 문제도 있지만, 2진영 구도에서 이를 너무 격하게 밀어붙일 경우 와우의 전체적인 게임 디자인 자체가 이를 받쳐줄 수 없었던 부분이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인구가 기우는건 답이 없거든요. 그렇기에 와우의 진영 시스템 도입은 아주 이상한 일이기도 하죠. 진영에 묶이는 집단적 소속감 등의 문제가, 진영간의 마찰이 없으면 전혀 자극되지 않아요. 와우는 그 장점만큼이나 다양한 단점들도 가지고 있지만 확장팩이 거듭되면서 다각도로 그 해결을 모색했고 실제로도 대부분 나아졌다고 봅니다. 그러나 딱 하나, 진영 문제만은 답도 없고 뾰족한 해결책도 보여줄 수가 없었습니다.  이 문제는 길드워즈2 정도까지 오면 얼추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길드워즈2에는 고정된 진영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서버 자체가 진영이고, 서버끼리 서로 싸우는 구도입니다. 서버 내부의 공간에서 플레이어들은 착실히 PvE 컨텐츠를 즐깁니다. 서버 외부의 공용 공간에서 다른 서버 플레이어들을 만나 에픽한 전투를 벌입니다. 3개 서버가 하나의 전장에 모여 24/365 지속되는 전투를 벌이는데, 물론 특정한 서버가 너무 강하거나 약할 수도 있습니다. 밸런스에 문제가 생긴 거죠. 고정된 진영을 가진 시스템 하에서 이 문제는 앞서 말씀드린대로 골치가 아픕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몇 가지 방법들이 있기는 하지만 제대로 문제를 해결해주기보다는 잠시 통증을 완화시키는 진통제에 가까운 처방입니다.  길드워즈2에서는 그럴때 맞상대하는 서버를 바꿉니다. 지금은 좀 달라졌을지 모르겠지만 제가 길드워즈2를 하던 당시에는 2주 로테이션으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3개 서버가 2주간 전투를 벌이고, 그 결과를 비교해서 매치메이킹을 다시 하는거죠. 물론 그 매치메이킹은 서버간의 실력 차이를 반영합니다. 하나의 서버가 하나의 진영이 되며, 진영간의 밸런스에 문제가 생기면 이를 2주에 한 번씩 이루어지는 매치메이킹을 통해 조정합니다. 소위 탑티어 (Top Tier) 라 부르는 최상위 3개 서버는 그 자부심도 대단하거니와, 24시간 내내 일정 이상의 병력 – 플레이어 – 을 동원할 수 있는 강력한 인원동원력도 갖추고 있습니다.  한편 길드워즈2의 이런 방식은 컨텐츠 추가 개발의 부담도 해결해줍니다. DAoC에서 3개 진영은 모두 독자적인 컨텐츠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미드가드/하이버니아/알비온의 3개 진영은 고유의 맵과 몬스터 등을 갖추고 있었죠. 이는 다시말하면 하나의 캐릭터로는 게임이 제공하는 모든 컨텐츠를 즐긴다는게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얘깁니다. 와우 또한 마찬가지죠. 중렙 이후는 대부분 분쟁 지역이라 컨텐츠를 공유한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분쟁지역의 다른 진영이 제공하는 퀘스트는 해볼 수가 없고, 각 진영 고유 지역은 아예 맛볼 수가 없습니다. 길드워즈2에는 이런 문제가 없습니다. 어차피 서버별로 PvE 지역의 컨텐츠는 완전히 동일하니까요.  개인적인 얘기지만 길드워즈2의 서버간 전쟁 구도는 2004년인가 2005년 경에 제가 일하던 프로젝트에서 제안했던 것과 100% 일치하는 구조입니다. 기각되어 직접 해보진 못했지만 길드워즈2를 해보면서 뭔가 내 안의 선견지명을 확인한 듯한 느낌이 들어 무척 뿌듯하기도 ... ;;  저는 mmog의 진영 개념을 꽤 좋아합니다. 샌드박스 타입 mmog는 게임의 거의 대부분의 영역이 플레이어 내러티브를 만들어내는 공장에 가까운데 비해, 와우에서 비롯된 테마파크 타입 mmog에는 그런 부분들이 많지 않아요. 그러나 진영 개념은 이런 테마파크 타입에 플레이어 내러티브, 나아가서 대서사가 펼쳐지는 집단 서사의 가능성을 월등히 높여주는 장치거든요. 그러나 이런 멋진 시스템도 명확하고 커다란, 극복하기 어려워보이는 결정적 한계로 인해 자주 쓰이지는 못했죠. 하지만 여기에 길드워즈2가 제안한 해결법은 그간 문제시되어 왔던 요소들을 꽤 많이 해결하고 있는데다가, 어차피 요새는 서버간의 구분이 없는 방식으로 mmog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보니 좀더 많이 쓰일 것을 기대해봄직도 ... 하긴 한데, 요즘은 애초에 mmog를 만드는 경우 자체가 드물어지니까요. 좀 서글프기도 하군요.
  • 2 repl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