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 와우 : 드레노어의 전쟁군주. 초반 소감

Zerasion
By Zerasion in Blue Board,
Voosco 님이 작성하셨던 포스팅의 아카이빙입니다. ---   며칠 전에 도적으로 만렙을 찍었습니다. 플레이타임은 ...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생각보다는 금방이더군요. 아직 레이드니 뭐 이런건 못 가보고 인던이나 몇 번 돌아본 상태이긴 하지만 지금까지의 소감은 간단하게 정리해보려 합니다. 일단 이 소감은 딱히 총체적 정리를 하려고 한 것이 아니기에, 얘기가 이리저리 튀고 산만할 수 있습니다. 부분부분별로 파편적인 소감들을 모아놓은 것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네요. 이 점에 유의해서 읽어주세용.  주둔지 주둔지는 예상보다는 괜찮은 것 같습니다. 일단 이런 종류의 - '하우징'이라고 말하기엔 스케일이 좀 달라서 아마도 '타우닝'이라고 해야할 것 같긴 하지만 그냥 하우징이라고 할게요 - 하우징 컨텐츠를 생각하면 대체로 가장 먼저 머릿 속에 떠오르는게 커스터마이징입니다. 내 집을 내 맘대로 꾸민다는 뭐 그런 방향성인데요, 와우의 하우징은 커스터마이징 개념은 크지 않습니다. 특히나 겉으로 드러나는 치장성 커스터마이징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어차피 인스턴싱될 공간인데 치장해봐야 뭣하겠어 ... 라는건 제 생각이긴 합니다만 아마도 와우 개발팀도 그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럼 커스터마이징이 아닌 뭐에 중심을 두느냐면, 당연히 치장성 커스터마이징의 반대인 기능성이겠죠. 레벨대에 맞는 퀘스트도 소개해주고, 각종 제작도 직접 하는 것보다 주둔지에서 하면 자원이 덜 들어갑니다. 기계공학 기초부품의 경우 직접 만들면 자원이 7개 필요한데 주둔지에서 만들면 자원이 2개면 되더군요. 대신 시간은 훠어어어얼씬 오래걸리지만요. 물론 주둔지에서만 가능한 컨텐츠들도 많습니다. 뭐 아직 전체상을 파악했다고 보긴 어려운 상태이긴 합니다. 캐릭터가 만렙을 찍었어도 아직 주둔지는 최고레벨인 3레벨로 올리지 못하고 있고, 부속된 다른 요소들 - 추종자라던가 다른 건물들의 레벨 - 도 한참 더 올려야하거든요. 바로 이 지점도 중요합니다. 치장성 vs 기능성으로 나누어 치장보다는 기능에 초점을 맞췄다고 보는 것도 맞지만, 주둔지가 노리는 또 다른 재미는 주둔지 자체의 '성장'도 있습니다. 주둔지의 성장은 방금 말씀드린대로 캐릭터의 성장보다 더 깊이 들어가고, 폭도 더 넓습니다. 즉 더 다양한 방면으로 성장이 가능합니다. 아직까지는 꽤 잘 짜여진 재밌는 컨텐츠라고 봅니다. 여전히 '주둔지의 성장이 끝으로 다가갈 경우' 어떨지는 말씀드리기 어렵지만요. 사실 와우에서 캐릭터가 만렙을 찍어야 본게임 시작이라고하듯, 주둔지도 일종의 만렙을 찍어봐야 그때부터 제대로 된 국물이 나오지않을까 싶어서 당장 판단내리긴 어렵네요.  스토리텔링
에 대해서는 일전에 페이스북에 적어둔 것이 있어 살짝 고쳐 옮겨옵니다.  1. 스토리텔링 방법 개선에 신경을 굉장히 많이 썼습니다. 전통적으로 와우는 '가라 리얼타임씬'을 사용하려 여러 노력을 많이 해왔는데, 그간은 이게 무척이나 어색해서 ... '노력했다' 정도의 의의말고는 없다고 여겨왔습니다. 근데 이번에는 그럭저럭 자연스러워서 봐줄만 한 정도까지는 된 듯 하네요. 잠깐 부연하자면 우선 이 분야에서 (개인적으로 보기에) 아직까지 탑은 구공온식의 초정교한+대물량의 컷씬으로 미는 것입니다. 스토리텔링 성능만을 보자면 최절정이죠. 문제는 게임 플레이와 컷씬이 완전히 유리되어 있다는 것. 와우는 구공온과는 반대로 게임 플레이와 스토리텔링을 어떻게든 하나로 묶어보고자 그간 꾸준히 노력해왔는데, 아직까진 '스토리텔링의 질'적 측면에서만 보자면 여전히 구공온에는 딸린다고 봅니다. 그러나 판다리아를 통해서 NPC병사 한 20명 서있는데 '2천명의 대군'으로 이해해주는 '플레이어의 게임적 상상력'이 아주 많이 필요한 수준은 벗어난 듯 싶고, (다시말해 판다리아 이전의 와우가 보여주었던 스토리텔링은 게임적 상상력이 아주 많이 필요했고) 드군에선 심지어 꽤 볼만한 장면들도 여럿 나옵니다. 개인적으론 이러한 '군중씬'의 연출이 무척 자연스럽고 보기 좋아진게 중요한 지점이지 싶습니다. 드군 처음 진입해서 카드가&드렉타르 따라 서리늑대 부족에게 오기까지의 스토리가 말하자면 '드군의 튜토리얼'인데, 이 튜토리얼 구간에서 그런 부분들이 아주 크고 강하게 드러납니다. 2. 한편 와우는 스토리 자체도 좀 문제라고 봅니다. 구공온을 해보면 스토리가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전달하는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스토리 유닛간의 관계가 굉장히 유기적이랄까 ... 근데 와우는 별로 그렇지가 못했습니다. 일단 전체 스토리가 상당히 난잡해보이는게 한 가지가 있고, 스토리간의 관계에도 뭔가 문제가 있지싶더군요. 와우는 전체적으로 봐서 큰 사건들은 기억이 나지만 각각의 사건들간의 관계는 기억이 잘 안납니다. 제가 길을 기억하는거랑 비슷한 느낌인데, 저는 '거점'은 잘 기억하지만 거점들 사이를 연결하는 '길'을 잘 기억을 못합니다. 그래서 마느님이 맨날 길치라고 놀리죠 ㅜㅜ 와우의 스토리도 지금까지는 이거랑 비슷한 기분이었습니다. 멋지고 거대한 사건들 자체는 기억이 나는데, 얘들 사이의 관계가 어땠는지는 모호했죠 ... 사울팽X볼바르의 앙그라타르(정확하지 않습니다) 관문 패배사건은 기억나고, 언더시티 침공 사건도 기억이 나고, 얼음왕관 성채에서 사울팽이 다시 등장하는 것도, 리치킹을 잡고나서 등장하는 '새로운 리치킹'도 기억은 나는데, 얘들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더라? 하는 식입니다. (최근에 검색해보고나서야 알게되었네요) 이게 사실 다 연결된 '에피소드'들인데 개별 사건은 기억나지만 사건들 사이의 흐름은 모르겠는거에요. 왜 그런지 구체적인건 제가 게임 서사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 잘 모르겠네요. 아무튼 구공온은 이런 현상이 없는데 와우는 있었다는거죠. 드군에선 이런 부분들이 그럭저럭 꽤 해소되었습니다. 일단 앞서 말한 '튜토리얼'에서 이번 확팩의 주적인 강철호드의 리더들을 뇌리에 강하게 심어준게, 그래서 스토리적인 흥미를 크게 올려놓은게 꽤 주효했지 싶긴해요.  3. 마시니마로 만든 씬들도 대격변때의 그 어색했던 시도들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을 했습니다. 여기서 '마시니마'라는건 리얼타임에서 사용하는 모델링과 애니메이션 등을 가져오되 프리렌더드 컷씬으로 사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세한건 여기로 가보시면 나오지만 영어 ... 입니다 ;; 암튼 대격변에서 볼바르X사울팽의 돌진씬이 특히 그랬는데, 유저들이 만든 마시니마와 퀄리티차이가 별로 없었죠. 듣기론 북미의 와우 팬 커뮤니티에서 아마추어 마시니마 제작자로 굉장히 유명한 사람을 데려다 만들라고 했다고 들었던가 그래요. 확실하진 않습니다만 그래서 그런지 아마추어티가 꽤 많이 났거든요. 근데 드군에서의 마시니마는 괴엥장히 보기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나만 그렇게 느끼는지 모르겠는데 전체적인 캐릭터들의 느낌이 오버워치랑 어딘가 굉장히 유사해보이기도 하구요. 아무튼 상당히 멋집니다. 이제 그냥 컷씬이라고해도 무방할 정도의 멋들어진 연출 - 특히 강철호드 리더들의 등장씬 ... - 이 최고에요.  4. 강력한 적군. 새 호드의 새 악역'들'인 강철호드는 그간 와우에서 보아왔던 적들 중 가장 마음에 듭니다. 카리스마 넘치고 (일리단은 너무 찌질해보여서 전 별로더라구요) 활기가 약동하고 (리치킹은 너무 엄숙해서 좀 거시기했음) 무엇보다 팀 단위라서 왠지 좋습니다. 페북에서 아는 분이 써주신 얘기지만 딱 '락그룹'같은 포스를 넘실넘실 풍깁니다. 드군의 튜토리얼 구간에서 그들 하나하나를 모두 소개한 후에 나중에 모아서 한번 더 보여주는데, 이들의 등장씬이 완전 너무 멋져서 같은 편의 드렉타르&가나르&쓰랄&카드가 버리고 왠지 저쪽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 아무튼 악역이 멋져야 맞서 싸우는 나도 덩달아 멋져지는거라 몹시 흡족합니다. 아쉽다면 컷씬이라는 장치의 한계상 당연히 내 캐릭터가 나타나서 활약해야하는 걸 기대할 때 정작 내 모습은 보이지 않고 다른 NPC들이 싸우는걸 봐야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걸까. 블랙핸드 vs 오그림 둠해머의 전투씬에서 그런게 아주무척매우많이 아쉽더군요.  개인화 와우는 시작할 때부터 철저히 개인화된 MMO를 만들어왔죠. 드군에선 그게 절정이지 싶습니다. 저는 드군이 막 시작한 당일 00시부터 게임을 했는데, 사람들이 그렇게 넘쳐나는데도 별로 걸리적거리질 않아요. 사람이 이렇게 많다면 전같으면 퀘스트 몹이 부족해서 퀘스트 오브젝트가 부족해서 허덕거렸을텐데 전혀 그런게 없었습니다. 이는 편리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내 주위의 다른 플레이어들을 전혀 신경쓸 필요가 없음 & 신경쓰이지 않음'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요 ... 이건 MMO로서는 별로 좋지 않은 덕목같은데 말이죠. 어쨌든 와우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 방향으로 달려왔고, 지금 와서는 그걸 구현하는 수법들이 엄청 고도화되었습니다. 아주 쾌적한 싱글플레이 게임에 가까워진거죠.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적대적이지 않은 모든 대상은 개인화되었습니다. 길바닥의 자원들도 개인화. 퀘스트 오브젝트는 물론 개인화. 대신 적대적 대상은 개인화를 하기가 어렵죠.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대고 칼질을 하는 모습은 보기 흉할테니까요. 하지만 몹들도 스폰이 유동적으로 변하는 듯 싶어서 어쨌든 큰 문제는 없습니다. 개인별 인스턴싱은 이제 당대 최고의 경지에 올랐습니다. 함께 말타고 옆에서 달리던 낯모르는 플레이어가 갑자기 여러분 옆에서 사라져도 놀라지마세요. 그는 그의 인스턴스로 나는 나의 인스턴스로 들어가는 바람에 서로 길이 갈린 것 뿐이니까요. 가끔 인스턴싱 되기 직전에 몹들이 우글거리던 지역이 가까워짐에 따라 잽싸게 샤샤샥하고 사라진 후 우호적 NPC들로 가득찬 지역이 되는 걸 보는 어색함만 무시할 수 있다면 대체로 많은 분들이 이런걸 좋아하니 이렇게 만든게 아니겠어요?  와우의 개인화는 절정에 올랐습니다. 딱 한 가지만 보충하면 완전히 완벽해질거에요. 보충해야 할 한 가지는 게임이 MMO라는 점이죠. 이걸 빼면 존나 완벽 ... 은 농담이고, 이러한 개인화가 야기하는 약간의 부자연스러워보이는 여러 현상들, 즉 앞서 말한 '같이 달리던 사람이 사라지거나' 아니면 '언뜻본 걸로는 몹들로 가득했던 지역인데 도착해보니 우호적 NPC들이 가득한 지역들' 같은게 마지막 남은 고지이지 싶어요. 이게 자연스러워지면 ... 좋겠죠. 자연스러워진다고 뭐 대단한 일이 일어날 것 같진 않네요. 그래도 좋아지는거겠죠. 아울러 '필드 파티플레이에 대한 배려 전무'도 조금 ... 물론 필드에서 파티플레이하는 사람이 극히 드물어졌다곤하지만, 전에는 '불편해도 가능은 한' 수준이었다면 드군에 와서는 '너무 불편해서 하고싶지 않아질' 수준이 아닌가 ... 싶습니다. 근데 해보진 않아서 여긴 확신은 못하겠네요. 레벨 디자인 드군에선 비행 탈 것이 삭제되었습니다. 만렙을 찍어도 여러분은 드군에서 날아다닐 수 없어요. 제한적으로나마 날 수 있는 요소들이 있긴 한데, 이 '제한'이 굉장히 크고 광범해서 우리가 날아다니던 시대는 이제 갔다고 보셔도 됩니다. 날 것을 삭제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와도 겹치는데, 레벨 디자인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어요. 이제 와우도 어느정도는 '모험하는 재미'를 좀 노려보려고 하나 싶습니다.  본래 와우의 레벨 디자인은 편의성 위주였죠. 현재 위치에서 목적지로 가기까지 대충 방향잡고 달리기만 하면 되는 수준으로 간단했구요. 중간중간 장애물이 있긴 하지만 큰 범위에서나 그렇고, 작은 범위에서는 그런거 없었습니다. 드군의 레벨 디자인은 좀 다릅니다. 디테일한 꼬불꼬불함에 신경을 써서, 종전처럼 단순히 방향잡고 직선으로 달린다고 도달하긴 어려워졌어요. 그러면 지형이 좀 복잡해졌으니 불편하냐면 그렇지는 않아요. 여기서 지도의 중요성이 강조됩니다. 와우의 지도는 철저히 기능적임. 플레이어들에게 전달해야 할 지형상의 특징을 전달하는데 초점이 맞춰져있다는거죠. 따라서 지도를 보면 대략 어떻게 가야할지 경로가 그려집니다. 이전의 레벨 디자인이 전혀 복잡하지 않아서 길을 찾을 필요조차 없이 직선으로 달리기만 하면 됐다고 말씀드렸죠. 드군의 레벨 디자인은 적당히 복잡해서 길을 '찾아야' 할 필요가 있지만 지도가 충실해서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그닥 어렵지 않고, 길을 '찾는' 과정은 충분히 재미있게 짜여져있음. 여기서 길을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들에 약간의 수직적 레벨 디자인의 요소가 가미되어 있기도 하구요. 요 난이도 조절을 꽤 잘 한 것 같아요. 길을 찾는게 너무 어려우면 짜증나고, 너무 쉬우면 재미없죠. 하지만 블리자드는 '균형'으로 먹고 사는 회사니까요. 그 사이의 균형을 잘 잡아서 너무 지루하지도, 너무 짜증나지도 않는 수준으로 맞춰놨습니다.  레벨 디자인은 좀더 살펴볼 필요가 있는 부분인데, 이제 막 만렙 찍은 상황에서는 아무튼 이정도의 소감인 걸로.  날탈 삭제 방금도 말씀드린 날탈의 삭제에 대해 좀더 얘기해보자면... 날탈이라는게 위에서 설명한 이유 - 레벨 디자인이 모험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 만이라면 기존처럼 레벨업 할 때는 걸어다니고 레벨업 끝나면 - 이제 길 찾을 필요가 별로 없어지면 - 날아다니셔도 됩니다 ... 로 해도 되지 않았을까싶기도 한데, 저는 지금처럼 날 탈을 아예 막는게 더 낫다는데 동의합니다. 이건 좀 모호한 얘기이고 저 혼자만의 생각에 가까울 수도 있는데 잠깐 소개해보자면 ... 와우에서 날탈은 게임의 추상성을 높이는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해요. 라프 코스터의 재미이론을 보신 분들은 거기에 나오는 간단한 예시를 떠올리시면 좋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사진을 보고 그걸 사람의 얼굴로 인식해요. 사진은 추상성이 극히 배제된 아주 현실적인 대상이죠. 근데 한편으로 사람들은 ^_^같은 이모티콘을 보고도 이걸 사람의 얼굴로 인식해요. 이 이모티콘 ^_^은 고도로 추상화된, 현실성이 거의 배제된 대상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마치 사진처럼, 이것도 사람의 얼굴로 인식하죠.  '사람의 얼굴'로 인식하는 두 대상, 즉 사진과 이모티콘을 놓고보면, 어쨌든 인식은 하지만 둘 사이엔 큰 차이가 있어요. 하나는 추상적이고 하나는 현실적이죠. 이 둘은 일종의 제로썸 구도를 형성해요. 하나를 높이면 다른 하나는 낮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추상성이 높아질수록 현실에서는 멀어지고, 현실에 가까워질수록 추상성은 증가하는거죠. 와우의 날탈이 와우라는 게임의 추상성을 높여준다는 얘기는, 날탈이 와우에 있어서 실제 사람의 얼굴 사진이 아니라 이모티콘과 같은 '표현법' 그리고 그러한 추상성을 '체감하는 방법'이라는 의미에요. 날탈의 움직임이 그래요. 만져보면 이건 짤탱이없이 가상이에요. 어떤 현실에서도 이런 식으로 움직이는 대상을 우리는 겪어본 적이 없어요. 그리고 반중력장치를 만들 수 있게 될 아주 먼 미래까지도 겪을 수 없을테고 말이죠. 겉보기엔 말이 되지만 겪어보면 가상임이 너무 선명한거죠. 와우의 날탈이 말이 된다는건 이모티콘을 사람의 얼굴로 인식하는 것과 같아요. 어쨌든 의미 자체는 성립하죠. 그러나 리얼한 사람 사진과의 차이는 배제할 수가 없어요. 물론 게임 내의 다른 부분들도 그렇지 않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건 이 글의 초입에서 얘기한 '정리되지 않은 얘기임'을 인용하며 오늘은 넘어가기로 하시죠. ㅋㅋ  한편 와우는 개인화를 지향하는 MMO죠. 따라서 '리얼월드'의 체감에는 그다지 민감하지 않을 수 있어요. 따라서 이러한 '날탈의 추상성' 이야기는 언뜻 와우의 방향성과는 별개의 이야기로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스탠드 얼론 RPG에서도 '몰입'을 해요. 그 몰입은 당연히 세계의 디테일이 살아있고, 추상적이기보다 현실적인 요소들에 대해 이루어지죠. 따라서 MMO의 MMO함과는 별개로, 이 세계를 '살아있는' 것으로 느끼기 위해서도 여전히 이러한 추상성의 배제는 유효하지 않은가합니다.  화심과 레이드의 변화 요 며칠 화심 이벤트라는걸 한다더군요. 만렙 (100렙) 찍고 화심가면 에픽머리와 심장부 사냥개 탈 것이 공짜 !! 그래서 가봤습니다. 화심을 전체적으로 아주 살짝 손봐서 1) 수치적으로 드군 만렙에 알맞게 2) 몇몇 괴팍한 구성 - 평판 올리고 퀘스트하고 물 퍼다가 불 끄기라던가 - 을 삭제 3) 몇몇 '초심자가 적응하기 어려울 공략' - 게돈의 살폭이라던가 등등 - 을 삭제하거나 약화해놨습니다. 덕분에 약 2시간 반정도 즐거웠네요. 사람들이 다들 예비군모드가 되서 '와 여기가 이렇게 바뀌다니 옛날엔 그랬지. 좋아졌네'라던가 '님들 제가 10년전에도 여기 탱하던 ...' 등등의 채팅을 남발하고 ... 전멸도 한 3-4번 했던 것 같아요.  10년이 지난 후 화심을 '지대로' 다시 해보니 와우가 레이드 부분에서 이루어왔던 발전들이 새삼스레 체감되더군요. 당장 떠오르는 몇 가지만 적어보자면  1. 레벨 디자인 다듬기 : 화심의 레벨 디자인은 광활해요. 너무 넓죠. 그 속에 몬스터들이 '마치' 무작위로 배치된 것처럼 자리잡고 있구요. 이 몬스터들 사이의 관계를 볼 수 있는건 주로 탱커들 뿐이에요. 탱커들은 어떤 몹이 어떤 코스를 언제 어떻게 로밍하는지, 무심한 듯 쉬크하게 멀찌감치 서있는 두 몬스터들이 서로 링크가 걸려있어서 한 마리를 풀링하면 다른 한 마리는 무조건 같이 온다든지하는걸 다 알고 있죠. 이러한 광활한 레벨 디자인은, 플레이어의 실수를 유발하는 측면이 커요. 풀링한 몬스터를 잡다가도 어찌저찌 무빙하다보면 풀링하지 않은 즉 얌전히 놀고 있던 몬스터가 애드되는 식이죠. 이런 일이 굉장히 흔했어요. 지금 레이드 디자인에는 이런 일은 거의 없죠. 애초에 의미없는 몬스터를 배치하지도 않구요. 화심에는 스킵해도 되는/그 자리에 있긴 하지만 딱히 잡지 않아도 되는, 그러나 애드되면 무조건 전멸을 초래하는 몬스터들이 굉장히 많은데 비해서요.  2. '빠른 전멸'의 사라짐 : 앞서 말한 경로로 몹들이 한 무리가 더 애드됐다고 해보죠. 다양한 일들이 일어나지만 대체로 정리하자면 이래요. 몬스터들은 플레이어를 하나씩 하나씩 잡아죽이고, 사람들은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도망가서 살 길을 모색해요. (어차피 다 죽을건데도 말이죠) 그리고 인원은 40명이나 되기에, 이렇게 사방팔방으로 멀리 도망간 이들을 몬스터가 다 잡아죽이는데는 시간이 꽤 소요되요. 공대의 전멸은 이미 확정이에요. 하지만 사람들이 하기에 따라서 전멸에 30초가 걸릴 수도, 5분이 걸릴 수도 있어요. 이때 '어차피 전멸인데 5분이 걸리는' 사태를 막기 위한 저 유명한 공대장의 오더가 '빠른 전멸'입니다. 공대장이 빠른 전멸 오더를 내리면 공대원들은 즉각 저항을 중지하고 (...) 얌전히 서서 죽어야해요. 요새 레이드에는 이런 구성을 찾아보기 드물죠. 어떤 사건이 있을 때 그 결과 (전멸)는 초장에 결정됐는데 시간 자체는 길게 소요되는 일이 없어요. 사건의 결과가 확정되면 그 사건이 종료될 때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금방이고 혼란을 초래할 (화심 빠전 상황인데 부활갔던 공대원이 무심코 던전 재입장하는 바람에 거의 제자리 찾아갔던 몹이 입구까지 다시 달려온다거나, 생각없던 회드가 탱을 전부했는데 몬스터가 다시 달려온다거나) 일도 없죠.  3. 이건 화심 얘긴 아니고 검둥 (검은날개 둥지) 얘긴데, 이전의 레이드에는 '수치싸움'이 중심이 되는 구성도 많았어요. 삼룡이의 탱커간 어그로 연계나 벨라스트라즈의 그것은 어그로 미터가 있다면 도움은 좀 되겠지만 실질적으로 게임내에서 어떠한 '시각적인' 형태로도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죠. 숫자만 왔다갔다하고 여기에 상응하는 이펙트를 '선명하고 명쾌하게' 보여주지 않는 구성이 굉장히 많았어요. 지금은 다르죠. 어떤 장소에 무슨 일이 일어날라치면 실질적인 효과가 발동하기도 전에 크고 아름다운, 누가봐도 알아볼 수 밖에 없는 뭔가를 거기에 보여주니까요.  뭐 어제 화심 두시간 반 돌면서 떠올렸던 생각들인데 두서가 없어서 별 도움은 안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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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만렙찍어보니 '적어도 만렙까지는' 재밌더라 ...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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