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 마크 컨: WoW가 MMO를 죽였다

Zerasion
By Zerasion in Blue Board,
sunbkim 님이 작성하셨던 포스팅의 아카이빙입니다. ---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오리지널의 리드였고 레드 5를 창립해 파이어폴을 만들고 있는 마크 컨이 MMORPG.com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www.mmorpg.com/showFeature.cfm/feature/7540/Mark-Kern-Have-MMOs-Become-Too-Easy.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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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O가 너무 쉬워지고 있지 않나요? 요즘 모든 MMO에 스며들어 있는 캐주얼함을 보셨나요? 언제 마지막으로 시작 지역에서 죽어봤나요? 40인 레이드는 어쩌다 5인 레이드로 줄었을까요? 엔드게임까지 가면서 어떤 성취감을 느껴본 적이 있나요? 아니면 엔드게임 만이 유일한 성취인가요? EQ와 울티마 시절에는 틈새에 해드코어 게임이었던 MMO가 접근성 높은 장르로 변한 원인부터 짚고 넘어가 봅시다. 제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팀을 이끌 때 접근성은 진언이었습니다. 여러 차례 반복을 거치면서 장르를 처음 접하는 플레이어들에게도 쉽고 직관적인 유저 인터페이스를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우리는 플레이어를 이끌어주는 수많은 퀘스트를 만들며서 다음에 뭘 해야 할지 생각할 필요가 없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WoW 인구가 늘어나고 더 많은 캐주얼 게이머에게 다가가면서 새로운 확장팩들은 더욱 더 정제를 거쳤습니다. 퀘스트 트래커가 들어갔고, 옛 콘텐츠를 빠르게 지나 확장팩의 "새로운 것"에 다가갈 수 있도록 주는 경험치도 늘렸습니다. 새로운 확장팩의 첫 퀘스트에서 얻는 장비가 이전 확장팩의 레이드 장비를 우습게 만들었습니다. 모두가 만렙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레벨업 속도는 더욱 더 빨라졌고 그 중간 과정은 모두 버려졌습니다. 그렇게 빨리 레벨을 올릴 수 있는데 밤에 로그아웃하기도 전에 쓸모없어질 레벨 20 장비를 신경 쓸 이유가 있을까요? 그리고 이게 통했습니다. 수백 만 명의 플레이어가 몰려왔습니다. 하지만 무슨 대가를 치렀을까요? 가끔 저는 WoW를 바라보며 "우리가 무슨 짓을 했나" 생각합니다. 무슨 짓인지 압니다. 장르를 죽였습니다. 이렇게 느끼는 이유는 한둘이 아닙니다만 특히 한 가지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바로 난이도 곡선입니다. 난이도 곡선을 내리면서 가장 크게 잃어버린 것은 성취감입니다. 장벽이 낮아져서 누구든 빠르게 만렙에 도달할 수 있다면 만렙 도달만이 게임에서 유일한 성취가 됩니다. 그 사이에 있는 여정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 자체로도 재미있고 보람 있어야 할 여정 말입니다. 누구도 멈춰 서서 풍경의 아름다움을 음미하거나 이야기나 역사에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럴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소방 호스로 분출되는 쉽고 간편한 퀘스트는 어서 해치우고 싶은 생각만 들고, 한 곳에 머물러 주변을 둘러싼 놀라운 세계를 인식할 여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퀘스트에 질렸습니다. 다음 퀘스트를 받아먹을 때까지 그저 완료를 향하는 퀘스트 트래커 숫자만 쳐다보는 것들 말입니다. 전혀 도전적이지 않기 때문에 플레이해도 만족을 느끼지 않습니다. 이렇게 너무 쉽고 빠르게 달성할 수 있기 때문에 개발자들이 풍부한 퀘스트를 만드는 데 시간을 쓸 동기도 없습니다. 눈 깜빡할 새 완료되고 버려질 뿐이니까요. 개발자들은 거의 모든 퀘스트를 깊이나 스토리가 없고 최소한의 작업으로 만들 수 있는 쥐 열 마리 죽이기, 배달하기, 호위하기 같은 것으로 만듭니다. 그 이상을 해봐야 가치가 없습니다. 이것으로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성취감이 없을 뿐 아니라 더욱 단순하고 판에 박힌 퀘스트를 즐길 이유가 더욱 줄어듭니다. 순간 순간의 게임플레이는 고통스럽습니다. MMO를 깊은 곤경에 빠트리는 것은 바로 이 쓰고 버리는 퀘스트 콘텐츠입니다. 더 넓은 시장에 닿으려고 콘텐츠를 더 쉽게 만들면서, 어느 시점에서는 그것이 다시 시장을 밀어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똑같이 계속 반복되는 공식이 지루해 졌습니다. 이건 세상을 탐험하는 게 아닙니다. 기나긴 목록을 따라가도록 주입 받을 뿐입니다. 선형적이고 이상적인 경로를 숟가락으로 떠 먹여주기 때문에 생각이 필요 없고 이렇다 할 선택도 없습니다. (오픈 월드 MMO가 선형적인 퀘스트 잔치로 변했으니 아이러니죠.) 몇 시간 편안하게 재미를 느끼기에는 좋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습니다. 지루해 하는 MMO 플레이어들이 무수하게 많아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WoW 공식을 따라가는 모든 MMO가 틀과 관습에 얽매여 여정의 즐거움을 의미 없는 과제의 연속과 맞바꾸었습니다. 우리는 그 경주의 결승점에서 계속 플레이할 수 있는 기적 같은 엔드게임을 기대합니다. 하지만 그런 건 없습니다.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 것은 엔드게임이 아닙니다. 여정입니다. 아름답게 만들어진 하나의 세계 속에서 일생의 경험을 음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순간 순간의 게임플레이에 보상이 있어야 합니다. 무한한 퀘스트가 아니라, 그 안에 있는 것으로도 기분이 좋고 자신의 페이스대로 경험할 수 있는 살아있는 세계를 선사함으로써 그 안에서 일생을 살 수 있을 듯한 느낌을 줘야 합니다. 캐릭터를 만렙으로 키우는 경쟁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 친구들과 오래 할 수 있는 취미가 되어야 합니다. 저희 게임 파이어폴은 끝이 아닌 여정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세계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플레이어에 맞춘 역동적인 이벤트가 일어나므로 어떤 지역도 완전히 정복할 수 없습니다. 우리 게임의 퀘스트와 미션은 역동적입니다. 우리는 이벤트가 하기에 재미있도록 시간을 들이고 있고, 충분히 도전적인 이벤트는  여러분이 원하는 만큼 해볼 수 있습니다. 우리 게임의 전투는 솜씨와 순간 순간의 재미에 맞춰져 있으며, 손재주와 조준이 필요하기 때문에 언제나 스스로를 갈고 닦을 수 있습니다. 최대화하려면 손이 많이 가는 정교한 성장 시스템도 있습니다. 우리의 제조와 자원 시스템은 어떤 MMO 중에서도 가장 깊이 있고 복잡하여, 요즘 MMO의 단순화된 제조 시스템보다는 오리지널 스타 워즈 갤럭시에서 사랑 받았던 제조 시스템과 공통점이 많습니다. 파이어폴은 증류한 MMO가 아닙니다. 난이도와 깊이를 약간 더하니 게임의 재미도 더해졌습니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우리 업계는 그동안 너무 쉬운 게임을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도전적이고 재미있는 게임으로 돌아가야 할 때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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