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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DF 기본 공지 사항   11/23/17

      이전 (phpbb & Ruby를 쓰던) GDF에 올라왔던 공지사항들을 새 형식에 맞게 수정했습니다.   인벤과 GDF에 대하여 일단, 도메인 주소에서 보실 수 있듯, 이 포럼은 인벤 (inven.co.kr) 에서 제공하는 서버를 통해 돌아갑니다.
      그러나 회원 DB나 운영은 완전히 별개로 독립되어 있습니다. 
      즉 인벤 아이디로 GDF에 로긴하거나, GDF 아이디로 인벤에 로긴하는 등의 일은 불가능합니다. 
      아울러 운영진 또한 인벤직원이 아닙니다. 
      이는 즉 인벤과는 전혀 다른 운영정책을 취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행여나 이 포럼에서 생긴 일에 대한 문의나 요청이 인벤측으로 가거나, 
      반대로 인벤에 대한 문의 또는 요청을 이쪽에 주셔도 저희로서는 어떻게 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혹시나 도메인 주소 때문에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을까봐 부연합니다.   GDF의 취지 게임 개발자의 역할을 나누는 데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최근 한국의 게임업계에서는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아티스트 중심의 구분이 어느 정도 보편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실력 있는 프로그래머, 실력 있는 아티스트에 대한 평가 기준과 거기까지 도달하는 방법론이 비교적 뚜렷한 것과는 달리, 어떤 게임 디자이너가 유능한 디자이너이며 그렇게 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수많은 이견이 있을 뿐입니다. 물론 팀의 성향과 개발 여건에 따라 게임 디자이너에게 요구되는 소양은 타 직군에 비해 다양할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뽑아내는 창의력, 다른 파트와 유연하게 소통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문서를 만들어 내는 능력 등은 때로 가장 중요하게 손꼽히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게임 디자이너가 자신의 전문 분야로 삼아야 할 것은 무엇보다 '게임 디자인 능력' 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재미있는 게임을 디자인 해내는 능력이야말로 기본이자 필수입니다. 그러나 정작 '어떻게 해야 게임 디자인을 잘 할 수 있는지' 공부하는 길은 그리 만만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어떤 것이 잘한 게임 디자인인지' 판단하는 것부터도 어렵습니다. 물론 찾아보려 마음 먹는다면 생각보다 많은 정보 더미를 얻을 수야 있겠습니다만, 그것은 말 그대로 건초에서 바늘 찾기입니다. 인터넷만 뒤져본다고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 정보들은 누군가의 하드디스크에, 어딘가의 클라우드 서버에, 때로는 오직 인쇄된 문서로만 존재하니까요. 그리고 아마, 가장 중요한 정보들은 수많은 게임 디자이너들이 '내가 이 삽질을 다시 하나 봐라!' 하고 결심하는 그 순간의 뇌리에만 존재할 겁니다. 빠르게 변하는 현대 사회 중에도 최고의 속도를 자랑하는 이 업계에서는, 분명 많은 유저에게 재미를 주던 검증된 게임 매커니즘도 불과 몇 년 사이에 닳고 닳아 진부한 것이 되기 일쑤입니다. 또한 잘 만들어진 게임일수록 그 안의 모든 시스템이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어, 몇 개의 디자인 장치를 떼어내 다른 게임에 갖다 붙인다 해서 성공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습니다. 결국 이 모든 일은 게임 디자이너들에게 끊임없이 공부할 것을 요구합니다. 무얼 공부해야 할지,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는 사실 막막한 상황에서 말입니다. Game Design Forum은 그런 상황에 대한 하나의 방법론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곳에서 게임 디자인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내용을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멋진 게임 디자인 자료들을 찾아내어 공유하고 싶습니다. 자기만의 디자인 노하우나 경험담이 있다면 서로 나누고 싶습니다. 딱히 정답을 찾아내진 못하더라도, 서로 대화를 나누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배우는 뭔가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일을 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입니다. 그래서 이 곳은 무엇보다 "게임 디자인"에 대해 토론하고 대화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와 비슷한 취지로 만들어졌던 많은 커뮤니티들이 결국 게임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에서 게임 개발 전반, 산업 전반에 관한 이야기로 옮겨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게임 디자인 역시 게임 개발의 일부인 이상 그런 화제들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일단 이 곳에서 활동하시는 여러분께서 "GDF는 게임 디자인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곳" 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지해 주신다면 이 곳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일은 없지 않을까 합니다. 언제나 그 점 기억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켜주세요 – GDF 사용 규칙 이 포럼을 사용하기 위해 숙지하고, 지켜주셔야 할 규칙들입니다.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가능한한 최소화하려 노력했는데도 이정도네요. 
      이 규칙들을 의도적으로 또는 과하게 어겼다고 판단되면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도 있습니다. 
      잘 지켜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게시판의 용도를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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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외부의 글을 옮겨오는 등의 경우에 불가피하게 평어체로 작성된 글은 무방합니다.   3. '포럼처럼' 사용해주세요.
      이곳이 다른 게시판이 아니라 굳이 '포럼' 의 형태를 취하는 이유는, 포럼의 기능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음과 같은 내용들을 염두에 두시면 됩니다.
      하나의 이슈에 얽힌 이야기는 하나의 글타래로만 다룹니다. 
      새로운 글타래를 매번 새로 만드실 필요가 없습니다. 꼭 댓글 형태로 달아주세요. 
      댓글을 아주아주 길게 달 수도 있으니 부담없이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새 글타래를 만들기 전에 검색을 해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이 사항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강제로 게시물이 이동/삭제될 수 있습니다. 유의하세요.
      너무 오래 전에 올라온 글이라 의견을 달아도 아무도 보지 못할 것 같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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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오래 전 이슈를 다시 언급하는 경우에도 새 글타래를 만드실 필요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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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ediahazard 님이 작성하셨던 포스팅의 아카이빙입니다. --- 원문 : https://www.filfre.net/2016/02/wasteland/ 우리는 '웨이스트랜드' 프로젝트가 정식으로 시작된 시점을, 인터플레이의 수장인 브라이언 파고가 그의 직원인 알란 파블리쉬와 함께 마이클 스택폴과의 미팅을 위해 아리조나로 날아갔던 1985년 12월의 그 날로 잡아볼 수 있겠군요, 만약 그 미팅에서 모든게 잘 풀렸다면 파블리쉬는 스택폴, 켄 세인트 앙드레와 함께 트리오를 이루어 그 게임을 릴리즈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하는 세번째 멤버가 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역할은, 다른 두 동료와 비교하였을 때 매우 큰 차이점을 갖게 됩니다. 잘나가는 프로그래머 파블리쉬는 그때 갓 스무살이 된 상태였지만 이미 게임 업계에서는 수년의 경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인터플레이가 설립되기 전에, 그는 (인터플레이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분 코포레이션'에서 코모도어 VIC-20 게임들에 대한 작업을 프리랜서로 했었고, '디자이너 소프트웨어'라는 작은 회사를 위해 'Murder on the Zinderneuf' 같은 게임을 애플 II 및 코모도어 64로 포팅했습니다. 파블리쉬가 인터플레이에 풀-타임으로 근무하게 되었을 무렵, 처음에 브라이언 파고는 그가 전에 하던 일과 비슷한 일들을 맡겼습니다. 인터플레이에서 제작하지 않은 게임 'Hacker'를 액티비전의 의뢰에 따라 애플 II로 포팅해주는 일이었죠. (바즈 테일이 히트치기 이전의 이 시기에는, 브라이언 파고는 먹고 살기 위해 이런 시시한 일거리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파고는 파블리쉬의 재능을 높게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파고가 항상 조언을 구하는 에이스 프로그래머 '빌 헤인만'(역주 : 지금은 레베카 헤인만)이 바즈 테일 시리즈와 일련의 일러스트가 가미된 텍스트 어드벤쳐 게임들의 개발에 발이 묶여있는 동안, 웨이스트랜드의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시작했고 그때 파고는 주저하지 않고 파블리쉬를 이 힘들고 어려운 일에 투입시켜 버렸습니다. 그는 파블리쉬에게 중차대한 임무를 맡기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웨이스트랜드의 거대한 아이디어가, 쥐꼬리만한 64K 메모리의 8비트 애플 II와 코모도어 64 에서 돌아갈 수 있도록 생명을 부여하는 일이었죠. 그러나, 파고와 파블리쉬가 비행기 밖으로 나왔던 그날, 파블리쉬를 위한 웨이스트랜드 프로젝트는 진행될 수 있을지 조차 불투명한 상황이었습니다. 세인트 앙드레와 달리 스택폴은 아주 회의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납득할 만한 이유들이 있었죠. 그날까지 그가 겪어왔던 컴퓨터 게임 개발에 대한 경험은 별로 유쾌한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몇년간 그는 3개의 다른 프로젝트들에 채용되어 각각 중요한 일을 맡았고 어떤 식으로든 프로젝트가 다 망하는 걸 보게 되었죠. 폴 자퀘이스(Paul Jaquays)와 1980년 상반기에 콜레코의 비디오 게임-디자인(기획) 그룹을 이끌었던 다른 2명의 테이블탑RPG 베테랑들이 끼친 영향 덕분에, 그는 자칭 '가정용 컴퓨터 시장의 도전자'였던 콜레코 아담(Coleco Adam, 역주 : 콜레코의 가정용 컴퓨터 브랜드)을 위해 2개의 게임 제작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그 둘이 더 흥미로웠던 점은, ‘터널& 트롤들(Tunnels & Trolls)’의 컴퓨터 게임화 프로젝트는 출시 전에 접혔고, 다른 하나였던 영화 ‘2010’(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속편)’ 컴퓨터 게임화 프로젝트는 콜레코 아담이 비참하게 실패한 뒤에 발매되었다는 것 입니다. 그 게임의 판매고가 어땠을 지는 뻔하죠. 그리고 나서 그는 SF 작가겸 게임 개발자였던 프레드 세이버헤건(Fred Saberhagen)으로 부터 컴퓨터 게임을 하나 기획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습니다. ‘검들의 책(Book Of Swords)’ 3부작의 마지막 편의 세계를 배경으로 벌어진 에피소드를 다루는 것이었습니다만, (스택폴은 이미 플라잉 버팔로 게임 회사와 함께 세이버헤건의 ‘버서커’ 시리즈 의 세계관으로 보드 게임 하나를 만드는 작업을 했었습니다) ‘검들의 책’을 컴퓨터게임화 하는 프로젝트는 세이버헤건이 자신의 개발사 ‘버서커 워크 Inc’를 설립하면서 지원이 끊겨서 마무리하지 못하고 결국 중단되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스택폴이 듣도 보도 못한 소규모 개발사였던 인터플레이와 함께 다시 한 번 이 난장판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좀 설득이 필요했죠. 인터플레이에게는 운좋게도, 12월의 그날 그와 파고 그리고 파블리쉬 모두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습니다. 파고와 파블리쉬는 스택폴에게 그들이 결정권을 공유할 것이며 그렇지 않더라도 웨이스트랜드-그리고 게임과 세계관이 가장 우선시되고, 프로그램 구현은 그 이후의 고려사항이 될 컴퓨터 게임-에 대한 그 자신의 새로운 비전을 수용할 의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설득했습니다. 스택폴의 비전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이 비전은, 1980년대 중반에 일반적으로 게임이 제작되는 방식과 너무 많이 충돌하는 바람에 잘려나가기도 했지만, 마침내 성공적으로 완료되었던 웨이스트랜드 프로젝트 및 그렇지 못하고 망한 프로젝트들 양쪽에 다 큰 영향을 주게 될 것이었습니다. 게임의 TRPG적 계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였는데, 파고의 계획에 따라 프로젝트 초기 부터 웨이스트랜드의 게임 룰들은 켄 세인트 안드레의 ‘터널&트롤들' 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스택폴의 ‘용병, 스파이 그리고 사립 탐정 TRPG’을 꽤 충실히 구현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켄 세인트 안드레가 ‘터널&트롤들'을 출시했던 1975년 부터 웨이스트랜드 까지 10년이 넘는 기간 사이에 명확한 진화의 선이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그 어떤 CRPG도. 웨이스트랜드 만큼 TRPG 플레이 경험을 컴퓨터 게임으로 가져오려는 진정한 시도를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 다음 해의 연초에, 스택폴과 세인트 안드레는 웨이스트랜드가 어떻게 굴러가고 있나 진행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한 주 정도 인터플레이의 캘리포니아 사무실을 방문했습니다. 세인트 안드레는 이미 망상을 담아낸 플롯을 하나 가지고 왔죠. 이 플롯은, 과격한 폭력 액션을 담은 영화 Red Dawn (역주 : 소련이 부분적 핵공격 후 미국 본토를 침략해 왔다는 대체 역사 포스트-아포칼립스 세계관을 바탕으로 미소년소녀 특공대가 여기에 맞서 게릴라 전을 벌인다는 1984년작 영화... 헉, 존 밀리어스 감독!!!이네요; 지옥의 묵시록 각본가 이며 코난 바바리언의 감독임)에서 표현주었던, ‘핵에 의한 상호 파괴 확증의 전쟁 억지력이 결국에는 그다지 상호 파괴적이지는 않았던 세계’에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 소련은 전쟁에서도 이겼고 이제 미연방을 차지하려고 했죠.(역주 : 핵전쟁이 일어났지만 주요시설만 파괴되고, 점령할 땅과 자원이 남아있는 세계관을 의미하는 듯 합니다) 플레이어는 아이오와의 농경지 일대를 숨어서 돌아다니며 레지스탕스 네트워크를 구축하려는 미국의 민병대 그룹을 조종하게 됩니다. 세인트 안드레와 스택폴은 캘리포니아 사무실 방문 이후, 한달 또는 그 이상의 시간을 옥수수밭의 지도를 그리고, 각각 다른 모습으로 보이게 될 무서운 농부들을 만드는 방법을 찾는데 보냈습니다.(이 작업 들의 일부는 웨이스트랜드 게임의 농경 센터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둘은 결국 고통스러운 진실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 그들이 디자인하고 있던 게임은 지루한 것이었다는 것을 말이죠. “내가 말했잖아. 이건 네가 본 중 가장 따분한 게임이 될거야" 세인트 안드레는 회고합니다. “왜냐면 말이지, 소련군은 막강한 화력을 가지고 있을텐데, 플레이어 캐릭터들은 처음에 허약한 상태로 시작해서 숨어서 돌아다니는 거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그리고 아주 천천히 천천히 성장하겠지" 세인트 앙드레는 게임의 무대를 미국 중서부 사막으로 옮기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가 태어나고 자라났던 아리조나와 흡사한 지역이었죠. 또한 그 지역은 원자 폭탄의 역사와 깊은 관계가 있어 주제와 공명하는 부분을 갖고 있었습니다. 플레이어의 파티는 심지어 라스 베가스-사람들이 발코니에 앉아 원폭 실험의 버섯 구름을 바라보기도 했던-그 도시에 방문할 수도 있었죠. 세인트 안드레는 소련군을, “방사능에 오염된 황무지를 돌아다니며 먹이를 찾는 잔인한 괴물들, 강력한 위협에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부랑자 무리들"로 대체하는 것도 제안했습니다. 그 얘기는 그때까지 진행 했던 많은 양의 작업을 뒤집겠다는 의미였습니다만, 파고는 그게 흘려버리기에는 너무 괜찮은 제안이라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그들 모두 이런 종류의 시행착오에 익숙해 지는 편이 좋을 것이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서 순조롭게 흘러가거나 계획대로 진행되는 일은 아주 조금 밖에 없을 것이었거든요. 인터플레이에서 보냈던 첫 주 이후, 세인트 안드레와 스택폴은 게임을 만들기 위한 계획들을 내놓았고, 엄격한 재택근무로 게임을 기획하던 역할에서 벗어나 코드로 구현하기 위해 캘리포니아 사무실의 파블리쉬에게 찾아왔습니다 - 역시 1980년대 중반의 게임 개발에서는 흔하지 않은 방식이었습니다. 댄 번튼이나 시드 마이어 같은 거물급 게임 기획자들이 뛰어난 프로그래머이기도 했던 당시의 경향을 보자면요.(역주 : 기획한 사람이 바로 코딩하고 그랬기 때문에 기획과 코딩이 분업되는 방식은 당시로는 생소했다는 얘기) 하지만 세인트 안드레와 스택폴은 자기네들 컴퓨터를 사용하곤 했어요 - 세인트 안드레는 코모도어 64를 썼고, 스택폴은 워드 프로세서를 실행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낡은 오스본(역주 : 5인치 모니터 달린 휴대형 컴퓨터. IBM 5100 비슷하게 생겼음)을 두들겼죠. , 컴퓨터 출력물과 손으로 직접 그린 대량의 지도들을 포함한 서류 뭉치들이 아리조나에서 캘리포니아를 향해 계속해서 배송되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세인트 안드레와 스택폴은 웨이스트랜드가 새로운 TRPG 모듈(Module, 역주 : TRPG에서 기본 시스템을 제외한 게임 시나리오 세팅 전반을 의미)로 계획된 것처럼 가정하고 그런 방식으로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웨이스트랜드는, 아주 더럽게 큰 규모의 어드벤쳐 모듈이 되어야 했습니다. 곧 그 둘이서 해내기에는 엄청난 작업량이라는 것이 명확해졌죠. 매 사각 타일 하나 마다 그게 어떤 걸 담고 있으며 여기서 플레이어의 파티가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는지를 지정하는 것까지 포함하는 레벨 디자인 공정에 대해 말입니다. 세인트 안드레는 이렇게 회고합니다. 브라이언 파고는 세인트 안드레와 스택폴이 ‘플라잉 버팔로 Inc’ 시절의 동료였던 리즈 댄포스와 댄 카버를 데려와서 맵(역주 : 레벨)을 만들게 하고, 게임 기획팀이 그곳에서 성장하게 하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 우리가 내놓은 작업물 들을 교정하고, 맵을 코딩하는 것을 도와주었던 이 친구들은, 레벨 디자인 자체에도 참여하기를 바라고 있었어요" 스택폴은 그렇게 회상하고 있습니다. “ 모두들 자기가 손수 만든 레벨이 있었으면 했어요. 게임에 자기 지문을 남기고 싶어했죠." 심지어 브라이언 파고-결정권을 쥐고 높은 자리에서 이 회사의 창작물에 관여해 손을 더럽히고 싶어하는 욕망을 결코 자제할 수 없어할 그 자신-조차도 직접 레벨 하나 만들고 싶다고 사정을 했습니다. “ 나도 맵 하나 만들고 싶어. 니들스(Needles)를 내가 맡게해줘" 세인트 안드레는 자신이 그 당시 이렇게 말했다고 회상합니다. “네 제가 말씀드리죠. 사장님이시니까요 브라이언, 사장님이 니들스를 맡으세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파고는 자신이 회사를 경영하는 것과 게임을 기획하는 것을 동시에 맡을 만한 시간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그래서 니들스 도시는 다른 인터플레이 직원인 브루스 발포에게 돌아갔습니다. 이렇게 다 합치니, 웨이스트랜드 매뉴얼의 크레딧에 ‘시나리오 디자인(역주 : 모듈의 디자인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한 시나리오가 아니라 게임의 컨텐츠 기획 전반을 의미함)' 항목에는 세인트 안드레와 스택폴을 제외하고도 최소 8 명 이상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파블리쉬는 이 기획 문서의 홍수를 코딩하는 와중에도, 한 두개의 레벨을 직접 디자인 했어요. 웨이스트랜드는 컴퓨터 게임의 역사 상, 코딩 및 그래픽 작업한 사람들 보다 게임 기획과 시나리오 집필에 더 많은 인력이 투입된 몇 안되는 게임 중 하나 입니다. 팀내에서 그 둘간의 비율은 서로 비슷하지도 않았어요 : 웨이스트랜드 팀에는 프로그래머는 정확하게 한 명(파블리쉬) 있었고 그래픽 아티스트도 딱 한 명(토드 J 카마스타 Todd J. Camasta ) 있었죠. 오직 집필과 게임 기획 작업에만 참여한 10명의 사람들이 이들과 함께 일했습니다. 게임 기획 프로세스에서 한 명의 역할이 간과되었는데요, 게임 매뉴얼의 크레딧에도 이름이 올라가지 못했던 죠 이바라(Joe Ybarra)였습니다. 그는 인터플레이와 당시 퍼블리셔였던 EA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맡았습니다. 그가 다른 많은 고전 게임들에서 그렇게 했던 것 처럼, 이바라는 재치있는 조언을 해주고 프로젝트가 제 궤도에 올라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배려해주었습니다. 세인트 안드레, 그리고 스택폴과 함께 개인적인 미팅을 하기 위해 기꺼이 멀고먼 아리조나 까지 날아가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세인트 안드레와 스택폴은 그들이 직접 맵을 만드는 것 보다, (제법 규모가 있어진) 레벨 디자이너들의 작업 공정을 관리하는 것에 더 시간을 많이 쓰게 되었습니다. 스택폴은 이렇게 말합니다: 스택폴은 이 오픈 월드의 모험이 클라이막스를 향해 달려가는 시점에 배치된 3개 가량의 맵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책임을 지고 만들게 되었습니다. 세인트 앙드레는 말합니다. 이 두 베테랑 TRPG 디자이너들과, 그들의 모든 기획들을 실제로 구현해내야하는 앨런 파블리쉬 사이의 관계가 항상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세인트 안드레는 “우리가 맵 하나에 대한 문서들을 거기에 들어갈 요소들과 함께 다 작성하고 나면 앨런은 ‘나는 저건 못만들어요’라고 하죠. “ 라고 얘기합니다. 그리고는 험난한 토론들이 이어집니다. 이 문제들은, 코모도어 64의 베이직 언어 였으면 자기가 쉽게 구현할 수 있다고 단정지어버리는 아마추어 프로그래머 세인트 안드레의 버릇때문에 더 험난해졌습니다. (스택폴은 이렇게 회고합니다 : 마치 에버러지 골프 코스의 아놀드 파머 앞에서 이렇게 떠들고 있는 얼간이 같았죠 ‘제가 20-foot 퍼트를 못할 거라는 게 무슨 뜻이죠? 저는 미니어쳐 골프 코스에서 20-foot 퍼트를 했었다구요!’) 한 연장전 토론은, 수류탄과 다른 “영역 범위 효과” 무기들에 대한 문제 제기의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세인트 안드레와 스택폴은 그 기능이 들어가기를 원했고 파블리쉬는 그게 너무 코딩하기 까다롭고 여러모로 불필요한 기능이라고 말햇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영웅, 조 이바라가 조용한 로비를 통해 브라이언 파고가 이 기능이 반드시 들어가도록 지시하는 쪽으로 유도하여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웨이스트랜드에서. 기술적 제한으로부터 기획을 분리시키려는 세인트 안드레와 스택폴의 의지를 정말 잘 보여주는 한가지 모습이라면, 프로그래머들이 대개 선호하는 수 체계(즉, 애플 II와 코모도어 64의 제한된 메모리에 딱 들어맞는 2의 거듭 제곱 체계)를 대부분 따르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파블리쉬는 본능 적으로 피스톨의 탄창에 대해 총알 16개와 32개가 들어가는 두 가지 타입이 되기를 원했어요. 하지만 세인트 안드레와 스택폴은 현실 세계와 유사하게 7개와 18개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앞서 1024 타일의 정사각형 맵에서 증명되었 듯이 세인트 안드레와 스택폴은 가끔 파블리쉬가 선호하는 숫자에 맞춰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주로 총기류와 관련한 설정이 되면 그들은 완강하게 나왔어요(헛!) . “메모리 관리 측면에서는 우아하지 않겠죠” 스택폴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건 리얼리티 라구요." 전례없이 복잡한 게임 세계를 터무니 없이 작은 메모리 공간에 쑤셔 넣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던 파블리쉬로에게, 이러한 로직은 그를 뚜껑 열리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가끔씩 못참고 폭발해버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천천히 그는 기획자들로부터 나온 모든 아이디어에 최선을 다하는 법을 배워갔고, 기획자들도 모든 아이디어가 다 실현가능하지는 않다는 것을 배워갔습니다. 적절한 상황에서의 그런 암묵적 합의와 함께, 그들의 관계는 점점 발전되어 갔습니다. 프로젝트의 막바지에 이르러서 세인트 안드레와 스택폴의 기술적 이해도는, 그들의 기획 요구 사항들을 단순히 글로 묘사하는 것을 넘어 코드 형태로 전달하기에 충분한 수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중 내성 굴림, 스킬과 능력치에 기반한 성공/실패 체크를 넣을 수 있었습니다" 세인트 안드레는 얘기합니다. “ 우리가 [던젼& 트롤]의 일인 플레이어용 던젼에서 시도했던 모든 것들이 웨이스트랜드의 마지막 몇몇 맵에 갑자기 들어가게 되었어요. 마이크와 내가 사실상 코딩 작업을 했기 때문이죠” 레벨 디자인 작업을 하지 않을 때의 세인트 안드레와 스택폴-특히,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주목을 받게 된 스택폴-은 웨이스트랜드의 스토리와 게임의 배경 시나리오 설정 텍스트 등을 담고 있는 패러그래프 책(역주 : 웨이스트랜드 게임 패키지에 동봉된 별도의 대사집)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 했습니다. 그 패러그래프 책은 아주 옛날 방식의 리바이벌로서 그다지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니었죠. 1979년으로 돌아가 보자면, 마이크로컴퓨터용으로 최초의 CRPG중 하나였던 존 프리맨의 ‘템플 오브 압사이’ (Temple of Apshai, 역주 : Epyx에서 개발/퍼블리싱한 초창기 던젼 크롤 게임)가 패키지 안에 던전&드래곤의 모험 모듈을 연상케 하는 “각 방의 묘사" 부클릿을 끼워줬습니다. 이런 방식은 ‘템플 오브 압사이’가 개발된, 믿을 수 없을 만큼 제한된 사양의 환경에서는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 개발 환경이었던 ‘래디오 색 TRS-80’(역주:Tandy에서 1977년 출시한 마이크로컴퓨터, 대량 생산된 초창기 PC중 한 모델)은 단지 16K의 메모리만 가지고 있었고 저장 장치는 카세트 테이프 레코더 였습니다. 1980년대 후반 8비트 CRPG의 황혼기로 들어서서, 게임 기획자들은 프리맨이 작업했던 TRS-80만큼이나 제한적인 환경의 애플 II와 코모도어 64같은 환경에서 방법을 찾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어요. TRS-80에 비해 애플 II나 코모도어 64는 4배의 메모리를 가지고 있었지만, CRPG 기획의 야망은 최소한 같은 배수 이상으로 더 커졌던 거죠. 8비트 PC의 저장장치 관점에서 봤을 때 양도 많고 비싼 비용이 들었던 텍스트를 동봉한 책자로 되돌려 담는(역주 : 옛날에는 텍스트를 동봉 책자에 넣어서 읽게 했다가, 환경이 좋아지면서 어플리케이션 안에 넣었는데 다시 책자로 빼게 된 것을 의미하는 듯) 것은 자연스러운 해결책이었습니다. 이걸 애플 II와 코모도어 65로부터 조금 더 쥐어짜낼 수 있는 최후의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해 보세요. 저 충직한 군마 같은 두 기종은 이미 그 누구도 예측 못할 정도로 오랜 세월 장수하면서 현역이었죠. 그리고 이건 그렇게 해가 되지도 않았어요. 물론 패러그래프 책을 동봉하는 것은 괜찮은 카피 프로텍션 중 하나였죠. (역주 : 게임만 카피해가면 중간에 막히게 되고, 패라그래프 책 복사하려면 분량이 많아서 복사비가 많이 듭니다. 물론 패러그래프 책까지 다 복사하기도 했는데, 그냥 디스크만 카피하면 되는 게임들에 비해서 방지 효과는 더 있었음). 웨이스트랜드의 패러그래프 책이 게임의 유니크한 특징이 되지는 못했지만, 세인트 안드레와 스택폴이 ‘터널&트롤’의 일인 플레이어용 어드벤쳐를 만들면서 쌓인 경험들을 유용하게 쓰는 데에는 최적의 것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정적인 텍스트의 단편들을 가지고 어떻게 하나의 인터렉티브한 스토리를 구축할 수 있는 지를 누구보다도 잘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해진 상황에 읽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읽어야 되는 부분까지 미리 처음부터 읽어버리는 치터들을 방해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 텍스트의 단편들을 어떻게 뒤섞어놓아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스택폴은, 플라잉 버팔로에서 작업할 때 부터 시작되었던 전통에 따라, 부클릿에 한 개 이상의 정교하게 꾸민 낚시용 가짜 스토리들을 만들어 넣었습니다. 속임수로 들어간 또다른 스토리의 전체 플롯은, 하필이면, 화성인의 지구 침략을 제대로 다룬 그 게임 만큼이나 난해해졌습니다. 모두 말하길, 웨이스트랜드의 패러그래프 책은 여러 가짜 이야기들을 진짜 처럼 착각하기 쉽게 만들 것이었습니다. 웨이스트랜드의 스크린 레이아웃은 바즈테일 시리즈의 것과 유사해 보일 때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최소한 바즈테일에서 약간의 코드를 갖다 쓰지 않았겠느냐 의심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로 보면 둘의 유사성은 상당히 피상적인 것일 뿐입니다. 세련된 게임성의 관점으로 보면 비교할 여지가 없죠. 웨이스트랜드는 제가 그렇게 사랑하는 게임이지는 읺습니다만 - 제가 곧 설명하게 될텐데요 - 이 게임은 의심할 여지 없이 출시되었던 1988년 당시의 CRPG 기획에 있어 최첨단을 대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애플II와 코모도어 64로 나오는 CRPG들 중에서 웨이스트랜드 보다 더 기교있는 게임이 나올 수는 없었어요. 이 플랫폼들의 제약을 감안한다면, 솔직히 어떻게 그들이 이걸 해낼 수 있었는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웨이스트랜드의 전례없는 세련됨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바로 스킬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용병, 스파이 그리고 사립 탐정 TRPG’ 때 처럼, 플레이어는 제한적인 D&D식(터널&트롤들에서도 그런 문제가 있었죠) 클래스 타입에서 자유롭게 벗어난, 최대 4명의 캐릭터를 자신의 목적에 따라 조정할 수 있습니다. 스킬이 커버하는 범주는 누가 보더라도 유용한 것들(탄창과 권총 다루기, 자물쇠 따기, 의료술)부터 완전 소수만 이해할 수 있는 것들(금속공학, 관료제에 대한 지식, 손재주 트릭)까지 다양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도서관 사서 경력도 있던 세인트 안드레는 도서관 사서 스킬도 필수로 포함 시켰습니다. 물론 이 스킬이 게임의 숭리 엔딩을 보는데 반드시 필요하게 만들었죠. ‘용병, 스파이 그리고 사립 탐정 TRPG’ 에서도, 모든 상황에서 캐릭터의 성공/실패 여부는 관련된 스킬 또는 관련된 능력치로 레벨에 추가 보너스를 받아 결정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한 캐릭터가 뭔가를 기어오르는(Climbing) 행동에 대해 성공하는지 결정하기 위해, 그 캐릭터의 등반 스킬(Climb skill)을 사용하면 게임 시스템은 캐릭터의 능력치 중에 민첩성(Agility)도 참고하게 됩니다. 이 시스템은 플레이어가 만나는 대부분의 문제에 대해 다양한 해결책들을 허용합니다. 여러분이 자물쇠로 잠긴 문 앞에 도달했다고 합시다. 여러분의 파티에는 아마도 자물쇠 따기 스킬을 보유한 캐릭터가 있었을테고 그걸 사용하는 방식으로 시도해보겠죠. 그 방법이 실패하면, 폭파 전문가(Demolition) 스킬과 함께 작은 플라스틱 폭탄들을 갖고 있는 캐릭터가 자기 방식대로 문을 날려버리는 시도를 할 수 있을 겁니다. 또는 완력이 쎈 캐릭터가 스킬들을 사용할 필요 없이 자신의 능력치 중 힘(Strength Attribute)을 사용해 문을 부딛혀 부쉬버리는 시도를 할 수도 있습니다. 캐릭터의 레벨 업 시스템에 의해 레벨 업 할 때마다 받는 포인트로 캐릭터의 스킬이나 능력치를 올릴 수 있지만, 자주 사용함으로 자연스럽게 스킬이 올라가는, ‘던전 마스터’(Dungeon Master, 역주 : 1987년에 아타리 ST, 아미가, 애플II GS 등으로 출시된 던전 RPG. 스킬이 사용할 수록 상승되는 시스템 외에 실시간 전투가 특징. 이후 SSI의 Eye Of Beholder 시리즈가 영향을 받은 듯 합니다)외에 기존의 어떤 CRPG에서도 볼 수 없었던 메카니즘도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던전 마스터는 게임으로 가능한한 웨이스트랜드와는 차별점을 가지면서도 여전히 CRPG라고 불리울 수 있는 그런 게임이었죠. 이 스킬 시스템은, 발매 시기의 8비트 CRPG 시장에서 세련된 게임성으로서는 유일하게 대등한 라이벌이라 할 수 있었던 ‘울티마 V’와 비교하였을 때 매우 차별화된 게임플레이 경험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인상적인 게임 내의 세계(역주 : 울티마 V는 1988년 출시 당시, 지금의 오픈 월드 게임 같은 스케쥴링된 NPC와 직접 탐험 가능한 방대한 세계를 본격적으로 선보여 플레이어가 판타지의 중세에 직접 살아가는 듯한 몰입감을 보였주었습니다)를 구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리차드 게리옷의 ‘흘린 빵부스러기를 쫒아오게 하는' 게임 기획 철학에 머물러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 플레이어가 정확히 어디에 가야하고 정확히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말해주는 길게 연결된 단서들을 조사하는 것이 게임의 승패를 좌우하게 되죠. 그와는 대조적으로, 웨이스트랜드는 여러가지 다른 방식으로 게임을 클리어할 수 있습니다. 만약 잠긴 문이 있고 그 앞의 경비에게 말할 패스워드를 여러분이 찾지 못했다고 합시다. 여러분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 총격전을 벌여서 돌파 하거나, 폭발물 같은 것으로 문을 날려버리거나, 뒷문의 자물쇠를 따고 몰래 숨어 들어가거나 말이죠. 아마도 웨이스트랜드는 그때까지 나온 CRPG 중 최초로, 플레이어가 자신의 개성대로 플레이하는 것을 시도하고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해주려는 게임이었을 겁니다. 여러분은 실질적으로 바즈테일의 포스트-아포칼립스 버전 정도로 생각하고 모든 지역에서 정면 공격으로 시작하여, 이게 선한 일인지 아니면 악한 일인지, 저들이 동료인지 아니면 적인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 없이 그곳에서 마주치는 모든 살아있는 생물들을 쓸어버리려 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이렇게 플레이할 수도 있어요 (전자의 방식에 상대적으로 보자면) 지적인 해결 방식인데, 협상을 시도하고, 몰래 잠입하고, 약간 사기를 쳐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거죠. 또는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그렇게 하듯 양쪽의 방식을 적절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싶은 기분이 들 때나 그럴 기회가 찾아왔을때 말입니다. 억지로 그런 상황을 만들려고 한다면야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웨이스트랜드에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 게임의 진행이 막히게 되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항상 가능성있는 다른 해결 방법들이 있거든요. 울티마 V 정도로 게임 플레이에 주제 의식을 담겠다는 야망은 별로 없었기 때문에 - 울티마 시리즈와 달리, 웨이스트랜드는 순수한 현실도피적 엔터테인먼트 그 이상 이하의 어떤 것도 의도하지 않았습니다 - 웨이스트랜드의 좀더 융통성 있고 플레이어에게 친화된 게임 기획은 더 전진할 수 있었습니다. 울티마V가 계속 과거를 돌아보고 있었을 때 말이죠. 정말로, 웨이스트랜드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매력의 거대한 부분으로 다가왔던 것은, 얼마나 다른 방식으로 플레이 해볼 수 있는가 그 숫자 였습니다. 인터플레이는 초기에 이러한 점을 캐취해냈고, 그래서 게임에 특이한 기능을 만들어 넣었습니다 : 그것은 정성들여 성장시킨 캐릭터들을 그대로 유지한 상태로 전체 게임 세계의 설정을 처음 시작할 때처럼 초기화시키는 기능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식으로 (캐릭터를 이어서 새로 게임을 하는 식으로) 많이 플레이하다 보면, 캐릭터들은 말도 안되게 이상한 높은 수치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얻게 되는 계급의 이름도 이상하죠 : “1등급 파고" 라던가 “광자 정력맨"이라던가... 캐릭터가 183레벨이 되는 궁극의 도전을 달성하면 받게 되는 랭크 “최고 얼간이(Supreme Jerk)” 등등. 이 기능으로 베테랑 플레이어들은, 잘 육성된 캐릭터 하나 만으로 게임을 클리어 하는 것을 도전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게임 시작시 캐릭터 생성에서 너무 안좋게 만들어 만들어져서 너무 벅찬 전투를 겪게 되는 난관에 봉착하였을때 빠져나갈 방법을 제시해 줍니다. 파티를 유지한 채로 게임을 다시 시작하여 초반의 쉬운 전투를 통해 충분한 경험치를 얻어 실패를 만회하는 것이죠. 이 기능은, 게임의 꽤 깊은 부분까지 진행하기 전에는 어떤 스킬들이 (내 플레이 스타일에) 실제로 유용하게 쓰일지 아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게임 기획 상의 명백한 결점을 보완해 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웨이스트랜드를 다시 플레이하기 위해 모든 면에서 게임 세계를 초기화해야 하는 기능이 바즈테일 류의 게임들에 큰 발전을 가져왔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제가 아는 한, 게임 내에서 변화한 모든 상태가 저장되는 정말로 완전히 지속되는 하나의 게임 세계를 갖고 있는 첫번째 CRPG는 1886년에 나온 ‘스타플라이트’(Starflight)였습니다. 하지만 그 게임은 1980년대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대형' 머신에서 돌아가는 거 였어요. IBM PC나 호환 기종은 최소한 256K의 메모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웨이스트랜드는 64K 내에서 해냈어요. 모든 하나하나의 지역들을 여러분이 플레이할 때 마다 다시 기록(Rewriting)하면서 그곳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를 반영했죠. 게임 초반에 니들즈 마을의 절반을 폭탄으로 날려버렸다면, 여러분이 훗날 니들즈를 다시 방문하더라도 파괴된 지역은 그대로 남아있을 겁니다. 이와 비교되는 부분인데, 캐릭터의 데이타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는 ‘바즈테일’ 시리즈에서는 여러분이 던젼 밖으로 나가면 잡았던 보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 있기 때문에 원하기만 한다면 같은 보스와 또 싸우고 또 싸우게 됩니다. 웨이스트랜드 게임 세계의 이러한 지속성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큰 그림을 그리는 측면에서 게임 속의 세계에 정말로 영향을 줄 수 있게 해줍니다. 이런 특징은 릴리즈 되던 당시의 게임들에게서는 거의 들어보기 조차 힘든 것이었습니다. 브라이언 파고의 언급에 따르면 : 웨이스트랜드는 프로그래밍의 놀라운 작품이었습니다. 젊은 앨런 파블리쉬를 과감히 배치했던 브라이언 파고의 믿음이 결실을 맺은 것이었죠. 기술적인 한계 보다는 게임 기획 자체에 더 몰두했기 때문에 -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작업해준 파블리쉬의 공로 입니다 - 세인트 안드레와 스택폴은 그게 돌아가는 하드웨어에서 해낼 수 있는 일에 비해 웨이스트랜드가 어떤 일을 해내고 있는지가 얼마나 경이로운가에 대해 완전히 감사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왜 나는 웨이스트랜드를 플레이하는 것을 좀더 즐기지를 못하겠지?’라는 이유를 언급하는 것 보다는 그냥 플레이 합니다. 저는 게임에 관련된 제 개인적인 이슈로 부터 좀더 객관적인 문제로 느껴지는 것들을 분리해려고 노력하며 여기에서 조심스럽게 다루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공정성을 고려하는 것과 다 털어놓고 얘기하는 관점에서 보자면, 저는 솔직하게 후자의 쪽을 더 우선시 하고 싶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웨이스트랜드 게임 내의 글들은 제 취향이 아닙니다. 세인트 안드레와 스택폴이 무엇을 추구하려 했는지는 알겠습니다 : 극단적이고 과장된 폭력 만화, 마치 당시의 십대 소년들이 선호하던 영화 ‘이블 데드’ 같은 시네마틱 기법 중 하나였죠. 그리고 그들의 작업은 꽤 잘되어 목표에 적중했습니다. 웨이스트랜드에서 여러분의 캐릭터는 적을 그냥 공격해 맞추는 정도가 아니라, 그들을 “짐승처럼 학대"합니다. 적들이 죽을 때 “피에 물든 소세지 처럼 폭발" 하며 “굵고 붉은 반죽으로“ 변해버리고 “죽음의 댄스"에 빠져버리고, 또는 “잘게 갈린 고깃덩이"가 되어버립니다. 예, 그리고 몇몇 시각적 이미지가 곁들여 집니다. 치료소에서 볼 수 있는 핏방울이 튄 옷을 입고 있는 외과의사의 이미지 처럼 말이죠. (역주 : 필자가 언급하고 첨부한 이미지는 IBM PC (MS-DOS) 버전에서 볼 수 있으며, 애플 II나 코모도어 64버전에서는 의사의 고어한 상징을 나타내는 핏방울 없이, 옷이 깔끔합니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디테일과 무관하게 원문에서 언급한대로 웨이스트랜드에는 고어한 폭력 표현이 다수 배치되어 있으며, 이후 정신적 후속작인 폴아웃 시리즈에서도 이런 고어/과도한 폭력적 표현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웨이스트랜드의 충성도 높은 팬덤에서 가장 사랑받는 이런 문구와 이미지들 속에서 찾아낸 개인적인 어필을 통해 여러분이 웨이스트랜드를 전체적으로 즐길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맷 바턴(Matt Barton)은 게임에 대한 그의 비디오 리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역겨워하거나 아니면 아주 재밌어하게 될 겁니다.” 그래요, 제가 느끼는 감정이 상당부분 저런 이분법에 대한 반박이라고 말해야겠습니다. 저는 이런 것들을 접할 때 역겨움을 느끼는지 또는 격분하게 되는지 감정을 잘 관리하지 못합니다. 특히나 이후의 너무 많은 게임들과 비교하게 되면서 부터요. 그것들은 대부분 이미지 보다는 언어로 묘사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게 웨이스트랜드에 들어갔던 것이든, 듀크 뉴켐에 들어갔던 것이든 전부 다 미학적 관점에서 재미 없고 따분한 것이라는 걸 찾아냈습니다. 대개의 경우, 저는 모든 것을 유머러스하게 받아들이는 위트를 발휘하기 보다는, 비윤리적인 행위에 바탕하고 있는 유머는 그냥 찾아내려 하지 않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다른 사람이고. 겪어온 일들도 서로 많이 다르겠죠. 하지만 우리가 각자의 기준으로 판단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여전히, 저는 웨이스트랜드에 담긴 글들에 다른 문제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CRPG 애호가 블로그에 ‘체스터 볼링브로크’(Chester Bolingbroke)가 남긴 리뷰에 의하면, 웨이스트랜드는 스토리의 일관성이나 일치함에 그다지 신경 쓴 것 같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캐릭터가 게임에서 만나게 되는 핵전쟁으로 인한 멸망 이후는 1998년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웨이스트랜드가 출시된 1988년에서 겨우 10년 지난 시점이 됩니다. 하지만 작가들은 복제인간 부터 텔레파시로 정신 교감이 가능한 기술까지, 터무니 없는 첨단 기술들을 게임의 여기저기 흩어 놓는 것이 편리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게임에 기여했던 다수의 게임 기획자들에 의해 게임 내 글쓰기의 기조 또한 대략 방향을 틀게 됩니다. 대부분의 경우 웨이스트랜드의 컨텐츠는 이블데드 같은 만화적인 강한 폭력성을 띄고 있었지만, 때때로 갑자기 어울리지 않는 서사적 심오함을 향해 달려가곤 합니다. 게임을 중반 이상 진행해야 비로소 메인 스토리라인으로 진지하게 들어가게 됩니다만, 얼마나 이 게임을 여러번 플레이 해보았건 간에 하드코어 웨이스트랜드 팬들 중 이런 것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극소수라는 것은 바보같고 터무니 없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역주 : 웨이스트랜드의 문학적 저작의 스타일에 대한 부분은, 1980년대 헐리우드 B급 영화 문화에 대해 거부감이 있는 듯한 필자의 개인취향이 어느정도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건 제 사견입니다만, 고어한 폭력의 묘사와 일관성을 희생하는 플롯의 급격한 변화, 장르 컨벤션에 충실함과 그것을 전복하는 것이 번갈아 나오는 특징 등은 웨이스트랜드가 시작할 때 영감을 받았던 B급 영화와 펄프 픽션등의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로 보자면 웨이스트랜드는 당시의 트렌드를 따르고 있던 것으로 보아야 되지 않나 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본문에서 필자도 웨이스트랜드가 Over-The-Top Comic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만, 이후의 부분에서는 마이크 스택폴의 소설가로서 커리어까지 들먹이면서 까고 있어서 ㅎㅎ; 펄프 픽션적 문화는 펄프 픽션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사족을 달아보았습니다.) 이후에 소설가로서 스택폴의 경력에 비추어보면 웨이스트랜드의 엉망진창인 플롯은 아이러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자체로 보면 큰 흠은 아니죠. 게임은 단순히 스토리를 합쳐놓은 것만은 아니니까요. 많은 훌륭한 게임들이 스토리가 부실하거나 스토리라고 말할 만한 게 아예 존재하지 않기도 합니다. 어떻든간에 쾌거 였어요. 웨이스트랜드는 스토리 보다는 게임 기획의 쾌거였고, 소설가 마이클 스택폴로 전향하기 전에 게임 기획자 마이클 스택폴로서 이룬 최후의 업적 중 하나였습니다. 그 스토리는, 대부분의 이른바 스토리-주도적 게임들의 스토리들 처럼, 웨이스트랜드의 탐색 가능한 영역들을 탐험시키기 위한 구실일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탐색 가능한 공간은 매우 인상적이었죠. 이유는 이미 앞에서 설명드렸습니다. 그런데 현실적인 구현 이슈들에 의해 (약간 모자라는 거였지만) 아직 덜 완성이 되었던 상태였습니다. 우아한 프로그램 구조 보다 우아한 게임 기획을 우선시하는 세인트 앙드레와 스택폴의 투지가 다시 문제를 일으켰어요. 웨이스트랜드의 게임 내에서 실제 구동되는 처리들은, 그 시대의 상황으로 보자면 거의 기적에 가까운 것들이었지만, 이런 구현들은 투박하고 우아하지 않은 인터페이스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제가 쓴 책에 의하면, 진정 훌륭한 게임은 플레이어가 수월하게 게임을 조종할 수 있다고 느끼게 해줘야 해요, 그러나 웨이스트랜드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모든 행동은 여러번 키를 눌러야 했어요. 미로처럼 꼬여있는 메뉴들을 살펴보는 데도 그렇게 해야 했습니다. 심지어 모든 알파벳 키를 다 쓰긴 했지만 키를 한 번만 누르는 커맨드(역주 : 그런데 사실 저때 나온 울티마 V도 한 행동을 위해 여러번 키를 눌러야 하는 인터랙션이 적지 않습니다...)였던 울티마의 올드-스쿨적 단순함과도 거리가 먼 것이었고, ‘던전 마스터'의 마우스-위주의 인터페이스 보다 직관성도 떨어졌어요. 웨이스트랜드의 일부 좋지 않은 게임 플레이감의 이슈들은 TRPG경험들을 컴퓨터 게임으로 과도하게 직역하려 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용병, 스파이 그리고 사립 탐정 TRPG’ 의 장엄하면서도 심플함은 컴퓨터로 옮겨놓자 투박하고 혼란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여러분이 지역을 탐험하게 되면, 여러분은 어디에서 적절한 스킬과 능력을 사용해야 하는지 추측하고, 직접 조작을 통해 시도해보게 됩니다. 여러분이 현재 탐험하는 레벨에 대해 계속 집중하면서 모든 파티원들이 제각각 보유한 스킬들에 대해 인식하고 있지 않다면, 게임의 단서들을 놓치기 쉽게 됩니다. 예를 들어 제일 처음 갔던 지역에서 수수께끼의 기계장치를 발견했다고 합시다(역주 : 텍스트로 묘사됩니다). 여러분은 그걸 그냥 게임의 배경 무대장치로 지나쳐버리지 않거나, 나중에 좀더 뭔가 알아내야 하는 것으로 간주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누군가의 지적 능력(Intelligence)을 사용해서 이것이 여러분이 고칠 수 있던 식수 정화 장치라는 걸 알아내는 게 더 낫습니다. 반면에 다른 지역의 다른 사각타일에는 비슷한 묘사가 그저 게임의 배경 무대장치로 나옵니다. TRPG게임, 그러니까 던전마스터와 플레이어들 사이에 재치있는 대화가 계속 오가고, 감사하게도 던전마스터의 상상에 의해 게임 세계의 모든 것이 완성되어 있고, 한 플레이어가 4명의 파티 전체가 아니라, 자신이 익숙하게 다루는 한 명의 캐릭터만 조종하는 ‘용병, 스파이 그리고 사립 탐정 TRPG’ 같은 게임에서는 이런게 훌륭히 잘 돌아갑니다. 하지만 웨이스트랜드에서는 이게 ‘시도해보고 오류를 찾아내는’ 것. 반복하는 지겨운 기계적 절차처럼 느껴질 수 있었어요. 웨이스트랜드의 기타 부분들은 영웅적일 정도로 대단하게 느껴지지만, 아마도 어긋난 시도로 보이는 것들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TRPG에서는 간단하고 직관적이었지만 컴퓨터 게임에 갖다 놓으면 극단적으로 플레이하기 까다로워지는 요소들인데, 그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디지털 영역으로 옮겨오려고 했습니다. ‘전속력으로 항진해! 망할놈의 어뢰들!’ 처럼 말이죠. (역주 : 남북전쟁때 북군의 해군 제독 데이빗 패러것David G. Farragut이 함대를 이끌고 가는 중 앞에 기뢰인지. 어뢰인지 깔려있다는 보고를 받았지만 그냥 밀어붙이고 전진해서 승리를 거두는 과정에 했다는 말이라고 합니다. “어뢰? 좆까라고 그래, 전속력 항진!” 이 더 잘어울리는 해석일 것 같습니다... 암튼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라서 리스크를 무시하고 일을 진행해야 할때 즐겨 인용되는 말이라고 함) 예를 들어, 여러분의 파티를 여러 그룹으로 나누어 동시에 서로 다른 지역에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좀 난해하고 혼란스러운 기능이 있습니다. 그 나름대로 인상적인 기능이고, 웨이스트랜드가 CRPG 역사상 최초로 시도한 또 하나의 업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걸 만드는데 들였던 시간과 노력을, 좀더 정리되고 플레이하기에 쾌적한 게임을 만드는데 사용하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문장의 구조 분석 기반 대화처리 엔진(역주 : 텍스트 입력 대화창을 의미하는 듯 합니다)이 때때로 튀어나오는데, 이건 명백히 사람 던전 마스터 하고나 가능한 자유로운 형식의 대화를 컴퓨터와 해보려고 하는 시도인데. 실제로는 그냥 ‘내가 무슨 단어를 생각하고 있나 맞춰 보세요’하는 지루한 게임이 되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는 플레이어가 단서를 놓치기 너무 쉽죠. (역주 : 해당 기능을 DM과의 대화라기 보다는 텍스트 입력 어드벤쳐에서 영향 받은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제가 세인트 안드레와 스택폴, 그리고 그들의 인터플레이 동료들이 CRPG 장르에 복잡성의 깊이를 더한 노력에 찬사를 보냅니다만, 컴퓨터 게임은 테이블탑 게임이 아닌 것이 사실이고, 마찬가지로 테이블탑 게임도 컴퓨터 게임과 다릅니다. 그리고 전투 시스템을 보면, 웨이스트랜드의 전투 관련 엔진의 기본은 아직 바즈 테일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고 있었습니다만, 인터플레이는 몇 가지를 더 추가하여 좀더 재미있게 만들었습니다. 바즈 테일과는 달리 전투 중 플레이어의 파티와 적의 위치가 맵에 그래픽으로 표시되었습니다. (역주 : 앞에 설명된 했듯이, 보통은 위저드리식 메뉴 전투인데 스페이스바를 누르면 탑뷰 화면이 보입니다. 그리고 바즈 테일은 전열 ~ 다음열 ~ 그다음열 등으로 그룹의 위치를 표현하던 다른 포스트-위저드리들과 달리 전투에 참여한 그룹들의 위치를 10 feet ~ 90 feet 내에서 표현해서 좀더 전술성의 요소를 높였는데, 웨이스트랜드의 전투 시스템도 바즈 테일의 시스템을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이 요소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바즈 테일에서 각 그룹의 위치를 텍스트로만 표시했다면 웨이스트랜드에서는 탑뷰 그래픽으로도 보여주는 식이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공격”, “방어”, “기타 등등" 이었던 초기 바즈 테일의 메뉴에 추가하여, 여러분은 파티를 움직여 엄폐물을 찾을 수도 있고 아니면 더 나아가서 악당 몇놈을 근거리로 오도록 유인해서 총으로 쏘는 것 대신에 지렛대로 그놈들의 머리통을 날려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웨이스트랜드의 전투는 여전히 재미없습니다. 이 획기적이면서도 많은 이에게 사랑받고 있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CRPG는, ‘왜 CRPG 기획자들과 플레이어들의 주류가 여전히 판타지 세팅을 선호하는가’에 대한 논쟁에 기여하고 있기도 합니다. 아이러니한 일이죠. 중요한 무언가 라고 느껴지는 것은, 아마 이게 문제의 본질일 수도 있습니다만, 마법을 쓰는 능력이 없다면 뭔가 길을 잃고 방황하는 기분이라는 겁니다. 마법 유저 캐릭터가 레벨업 해서 새로 배운 마법을 시험해볼 때의 두근거림을 잃는 것뿐 아니라, ‘위저드리’나 ‘바즈 테일’ 같은 게임에서 플레이어에게 큰 도전 요소가 되기도 하는, 마나mana 관리의 전략성 또한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역주 : 위저드리...는 마나 라기 보다는 레벨 당 마법 사용 횟수 제한을 가지고 있고 여관에서 휴식하면 충전되는 식입니다. D&D의 메모라이즈를 좀더 단순화한 형태가 맞을 것 같습니다. 위저드리 6편에 가서는 한 주문당 여러 포인트를 사용하는 마나 식으로 바뀝니다.) 이론적으로 보자면, 웨이스트랜드에서 점점 더 강한 위력의 총을 획득하고 그 총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 탄약 소지량을 관리해야 하는 필요성이. 판타지 게임에서 마법을 쓰기 위해 마나를 관리하는 요소를 대체해야 할텐데요, 실제로 그렇게 잘 돌아가지 않습니다. 새로 총기를 얻는 것은 새로 마법을 배우는 것 만큼 재미있지는 않습니다, 특히나 웨이스트랜드에서 발견하게 되는 새로운 총기라는게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 그렇지요. 그리고 플레이어는 탄약 상점으로부터 그다지 멀리 떨어질 수도 없고,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여하간 탄약도 너무 많이 가지고 다닐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 전투가 많아요. 세인트 안드레와 스택폴이 애석하게도 CRPG 전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가지가 바로 이 배회하는 몬스터들(역주 : 랜덤 엔카운터를 의미하는 듯)을 애정으로 감싸준 것입니다. 웨이스트랜드의 (플레이 경험 중) 많은 부분은 “가죽옷 입은 얼간이"와 “Ozoners(역주 : 무슨 속어인지는 모르겠는데 게임 내의 모습은 샷건을 든 동네 건달 입니다)”를 상대하는 위험부담 없고 지루한 노가다 전투의 반복으로 채워집니다. 슬프게도 이 게임의 더 재미있고 혁신적인 부분과 동떨어진 경험입니다. 하지만 뭐 적어도 플레이 시간을 늘리는 데에는 기여를 했죠. 이런 이유들 때문에, 저는 웨이스트랜드에 다른 사람들보다는 조금 덜 열광했습니다. 제겐 이 게임이 시대를 초월하는 클래식이라기 보다는 CRPG 역사상 중요한 타이틀이라고 생각되었고, 게임 플레이 경험이 쾌적하기 보다는 호기심을 끌고 흥미로운 쪽이었습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한 게 창피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기존의 한계에 도전하여 그것을 극복한 게임들이 필요했고, 웨이스트랜드가 확실히 해냈던 무언가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1988년에 정말 이런 혁신이 있었다니 하는 놀라움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엄청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점입니다. 파고, 파블리쉬가 스택폴을 만났던 1985년 12월의 미팅과 미팅과 웨이스트랜드의 발매일 사이의 기간을 보면, 웨이스트랜드는 1980년대의 업계 표준에 비교하였을 때 유별나게 긴 개발 기간을 갖는 게임이 됩니다. 그리고 아마 여러분도 추측하셨겠지만, 이렇게 개발이 길게 걸리게 되는 것을 결코 의도하지 않았습니다. 인터플레이는 1986년 6월에 열린 ‘여름 컨슈머 일렉트로닉 쇼'에서 처음 웨이스트랜드 프로젝트를 공개했습니다. 마치 그해 크리스마스에 게임을 사서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인상을 주면서 말이죠. 하지만 개발은 그 이후로 꼬박 2년을 더 썼습니다. 웨이스트랜드의 긴 제작 기간 덕분에, 1987년은 일반적으로 다작을 추구하던 인터플레이에게 매우 한산한 한 해가 되었습니다. 구작들의 포팅 작업이 계속 공개되는 동안, 회사는 그 해에 단 하나의 새로운 오리지널 타이틀도 내지 못했습니다.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겠다는 마이클 크랜포드의 결정에 따라 프로젝트 전반이 빌 하인만에게 넘어간 ‘바즈 테일 III’는 1987년 초반에 개발이 시작되었지만 웨이스트랜드 처럼 작업이 길어져 1988년까지 이어졌습니다. (컴퓨터 게임 개발이라는 직업이 슬슬 좋아지기 시작한 스택폴은, 하인만의 기획을 돕기 위해 바즈 테일 III의 스토리라인과 텍스트도 썼습니다) 감사하게도, 바즈테일 I과 II가 잘 팔려서, 이 출시작이 부족한 시기를 별 문제 없이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웨이스트랜드의 늑장 출시가 있기 직전에, 세인트 안드레, 스택폴 그리고 파블리쉬는 그들과 함께 일했던 다른 사람들 한보따리를 데리고 패키지에 들어갈 홍보용 사진을 찍기 위해 소노란 사막(Sonoran Desert)으로 향했습니다. 모두들 동네의 가죽 옷파는 가게 및 자기 옷장속 어딘가 처박아둔 가방들을 뒤져서 이상한 소품들을 찾아냈고, 전문 분장사가 그들을 영화 ‘매드 맥스’에서 튀어나온 로드 워리어들처럼 바꾸어 놓기 위해 고용되었습니다. 열성적인 총기 수집가였던 빌 하인만이, 사진찍을 때 스탭들이 들고 있을 무기들을 제공해주었습니다. 그 중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은, 웨이스트랜드 패키지 속지를 장식했는데 나중에 패키지 표지의 아트 보다 더 게임을 상징하는 요소가 됩니다. 유니크한 비전으로 게임을 만든 이 유니크한 개발팀에 대한 적절한 헌사로서 말이죠. 여러 달의 개별 작업이 소요된 후, 웨이스트랜드와 바즈 테일III, 두 게임 모두 거의 비슷한 시기에 개발이 완료되었습니다. 브라이언 파고가 EA에 이 기쁜 소식을 전하자, EA는 납기를 초과한 이 두 게임을 두달 간격 내에 같이 출시해버리겠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1988년 5월에는 웨이스트랜드를 출시, 1988년 7월에는 바즈 테일 III를 출시 - 브라이언 파고의 거친 반대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그의 우려에는 타당한 근거가 있었습니다 : 새로 출시되는 이 두개의 CRPG 대작 게임이 어필할 수 있는 소비자들은 거의 같은 그룹이기 때문에, 한 게임이 다른 게임의 세일즈 깎아먹을(cannibalize)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당시의 인터플레이 처럼 긴 기간 동안 새제품 출시가 없었던 작은 회사로서는, 이 결정이 그저 단순 삽질 수준이 아니라 회사의 미래로 봤을 때 상당히 위험한 판단으로 느끼지는 것이었습니다. 파고는 EA와 함께 하면서 불만이 점점 커져갔는데요, 인터플레이는 퍼블리싱 계약 때문에, 그들이 만들어준 히트 게임들에서 충분한 수익을 못가져오고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빨대 꽃히는 거야. 브라이언 파고가 그동한 심사숙고 하던 계획 - 인터플레이를 개발사일뿐 아니라 퍼블리싱도 하는 완전한 퍼블리셔로 전환하는 거야, 패키지 박스에 우리 회사 이름이 찍히고... 오직 우리 이름만 찍히는 거지 - 을 실행하기로 결심하면서, 웨이스트랜드와 바즈 테일 III는 인터플레이가 EA를 퍼블리셔로 출시하는 마지막 게임이 되었습니다. 이미 너무 정형화된 흥행의 패턴에 따라, 바즈 테일 III - 웨이스트랜드보다 좀더 전통적인 게임이고, 더 혁신이 적으며, 히트작의 후속작인 게임 -의 판매고가 훨씬 더 높았습니다. 웨이스트랜드의 흥행이 실패하지는 않았습니다만, 바즈 테일 III처럼 완전 대박은 아니었죠. 의심할 여지 없이 이런 이유 때문에, 인터플레이나 EA 둘다 많은 비용을 들여서 웨이스트랜드를 (바즈 테일 시리즈 처럼) 여러 플랫폼으로 포팅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애플 II와 코모도어 64의 오리지널 버전이 나온 뒤 9달 지나서 1989년3월에 MS-DOS 버전으로 나온 것이 유일한 포팅이었습니다. 인터플레이의 프로그래머 마이클 쿠알스(Michael Quarles)가 작업 했고, 약간 개선된 그래픽과 그다지 사용하고 싶지는 않은 마우스 인터페이스를 가지고 있었어요. 원작을 플레이 했던 사람들 대부분은 이게 그냥 8비트의 이식작 정도로 알고 있지만, 이 버전이 출시된 후 부터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DOS 버전으로 플레이 했습니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죠 : 8비트 버전처럼 디스크를 여러 개 갈아 끼우는 저글링의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되었고, 모든 맵을 저장하고 로딩하는 시간 동안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거든요. CRPG 역사상 웨이스트랜드의 위치는, 게임의 판매량이 나타내는 것 보다 언제나 더 큰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건 브라이언 파고의 마음에서도 그랬죠. 하지만 불행하게도, 웨이스트랜드의 유산을 활용하여 뭔가 하려는 그의 능력은 EA와 갈라서면서 바로 태클이 걸리게 되었습니다. 두 회사 간의 계약에 따르면, 바즈 테일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웨이스트랜드의 제품명에 대한 권리도 퍼블리셔가 가지게 되어있었습니다. 따라서 잠재력을 지니고 있던 한 타이틀과 이미 잘 나가고 있단 한 타이틀은 갑자기 진행이 멈추게 되었습니다. EA는 어떤 방법으로도 아이디어를 노출하지 않으면서, 자체적으로 바즈 테일 IV를 개발하는 시도를 하며 시간을 까먹었습니다.(역주 : EA에서는 그 이후로 어떤 바즈 테일 게임도 내놓지 못했습니다. 인터플레이는 기존에 바즈 테일 IV로 진행되던 프로젝트에서 시나리오 설정 및 시스템 등을 변경하고 웨이스트랜드의 스킬/능력치 굴림을 적용한 ‘드래곤 워즈Dragon Wars’를 출시합니다.) 상대적인 판매량을 고려해보자면 이상한 일인데, EA는 웨이스트랜드의 후속작 비슷한 거로는 결실을 냈습니다. 패키지에 웨이스트랜드 라는 이름을 감히 쓰지는 못했지만요. 패키지에 써진 설명글들을 보면 어떤 게임인지 쉽게 추측할 수 있는 파운틴 오브 드림(Fountain of Dream, 1990년에 출시, 역주 : 저는 이 게임 헤봤습니다. 거의 웨이스트랜드 클론임)은 웨이스트랜드의 MS-DOS 버전에 쓰였던 마이클 쿠알스의 엔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별로 대단한 반응은 없었습니다. 작은 팡파레와 함께 스리슬쩍 출시되었고, 리뷰에서 혹평을 받고, 판매도 부진했고, 사랑받지 못한 게임이었고, 오늘날에 거의 잊혀지다시피 했습니다. 웨이스트랜드라는 상품명에 대한 권리를 갖지 못했던 때, 파고는 개발팀을 활용하고, 오랜 기간 노력해서 만든 툴과 게임 엔진으로 웨이스트랜드의 게임 플레이와 비슷하지만 사실상 속편은 아닌 다른 게임 들을 만들 계획을 세웠습니다. 처음에 이 프로젝트는 민타임(Meantime)으로 불리웠습니다. 그리고 이 게임은 스택폴이 시나리오를 쓰고 기획했는데, 웨이스트랜드와 유사한 점이 많았죠. 기본 컨셉은 웨이스트랜드 만큼 흥미로운 것이었습니다 : 시간 여행을 하는 게임인데 플레이어는 이 여행을 통해 역사적 인물들을 만나게 됩니다.(때때로 전투를 벌이기도 합니다.) 시라노 드 베르즈라크부터 P.T. 바넘, 알버트 아인슈타인, 아멜리아 에어하트 까지 다양했죠. 1989년 1월에 열린 겨울의 국제전자박람회(CES)에서 브라이언 파고는 ‘민타임’이 그해 여름에 출시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이런 말도 했죠 “저는 게임의 각 지역들을 테스트 해보고 있습니다. 바로 지금 말이죠.” 하지만 게임을 빛을 보지 못했어요. 결코 풀어내지 못한 기획적인 문제와, 무엇보다도 급격한 하드웨어의 기술 발전 때문이었죠. 웨이스트랜드에서 가져온 대부분의 개발 툴들은 애플 II와 코모도어 64에서 돌아갔는데, 이 플랫폼은 1989년에 단종되어 버렸어요. 인터플레이는 이 툴을 MS-DOS용으로 옮기는데 몇년을 소모했습니다. 하지만 프로젝트는 결국 지지부진하다가 폐기되었어요. 아마 좀더 중요한 다른 프로젝트들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들이 웨이스트랜드에 쏟아 부었던 열정을 보았을 때 다소 놀랍게도, 세인트 안드레와 스택폴은 컴퓨터 게임 기획 분야에 오래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세인트 안드레는 다시 자신의 도서관 사서일로 돌아갔고 부업으로 TRPG 기획일을 했습니다. 수년이 지나서 브라이언 파고가 웨이스트랜드2 프로젝트를 위해 부르기 전까지는 전혀 컴퓨터 게임쪽 일을 하지 않았어요. 스택폴은 웨이스트랜드 이후 몇년 동안은 인터플레이에 머물면서 ‘민타임’과 다른 몇몇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플라잉 버팔로 시절부터 오랜 친구였던 리즈 댄포스와 함께 말입니다. 하지만 스택폴의 이름은 게임 크레딧에서 점점 사라져갔고 그와 비례해서 프랜차이즈 소설 표지에 더 많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첫 소설은, 배틀테크 세계관으로 한 것인데, 웨이스트랜드와 바즈 테일 III 출시와 비슷한 시기에 출판되었습니다.) 브라이언 파고는 자신의 열정이 담긴 프로젝트 중 항상 최고로 손꼽는 이 게임을 잊지 못하고 마침내 되살려 냅니다. 처음에는 정신적인 후속작이라 할 수 있는 ‘폴아웃(1997)’, ‘폴아웃2(1998)’를 통해서, 그리고는 킥스타터 펀딩을 받아 뒤늦게야 나올 수 있었던, 정신적 후속작일뿐 아니라 게임 이름도 후속작인 ‘웨이스트랜드2(2014)’를 통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들은 한참 나중에 하기로 하죠. (참고 자료 출처 : PC Player of August 1989; Questbusters of Juy 1986, March 1988, April 1988, May 1988, July 1988, August 1988, October 1988, November 1988, January 1989, March 1989. On YouTube, Rebecca Heineman and Jennell Jaquays at the 2013 Portland Retro Gaming Expo; Matt Barton’s interview with Brian Fargo; Brian Fargo at Unity 2012. Other online sources include aMichael Stackpole article on RockPaperShotgun; Matt Barton’s interview with Rebecca Heinemanon Gamasutra; GTW64’s page on Meantime. 웨이스트랜드는 GOG.com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역주 : 스팀에서도 팔아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