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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DF 기본 공지 사항   2017년 11월 23일

      이전 (phpbb & Ruby를 쓰던) GDF에 올라왔던 공지사항들을 새 형식에 맞게 수정했습니다.   인벤과 GDF에 대하여 일단, 도메인 주소에서 보실 수 있듯, 이 포럼은 인벤 (inven.co.kr) 에서 제공하는 서버를 통해 돌아갑니다.
      그러나 회원 DB나 운영은 완전히 별개로 독립되어 있습니다. 
      즉 인벤 아이디로 GDF에 로긴하거나, GDF 아이디로 인벤에 로긴하는 등의 일은 불가능합니다. 
      아울러 운영진 또한 인벤직원이 아닙니다. 
      이는 즉 인벤과는 전혀 다른 운영정책을 취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행여나 이 포럼에서 생긴 일에 대한 문의나 요청이 인벤측으로 가거나, 
      반대로 인벤에 대한 문의 또는 요청을 이쪽에 주셔도 저희로서는 어떻게 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혹시나 도메인 주소 때문에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을까봐 부연합니다.   GDF의 취지 게임 개발자의 역할을 나누는 데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최근 한국의 게임업계에서는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아티스트 중심의 구분이 어느 정도 보편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실력 있는 프로그래머, 실력 있는 아티스트에 대한 평가 기준과 거기까지 도달하는 방법론이 비교적 뚜렷한 것과는 달리, 어떤 게임 디자이너가 유능한 디자이너이며 그렇게 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수많은 이견이 있을 뿐입니다. 물론 팀의 성향과 개발 여건에 따라 게임 디자이너에게 요구되는 소양은 타 직군에 비해 다양할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뽑아내는 창의력, 다른 파트와 유연하게 소통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문서를 만들어 내는 능력 등은 때로 가장 중요하게 손꼽히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게임 디자이너가 자신의 전문 분야로 삼아야 할 것은 무엇보다 '게임 디자인 능력' 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재미있는 게임을 디자인 해내는 능력이야말로 기본이자 필수입니다. 그러나 정작 '어떻게 해야 게임 디자인을 잘 할 수 있는지' 공부하는 길은 그리 만만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어떤 것이 잘한 게임 디자인인지' 판단하는 것부터도 어렵습니다. 물론 찾아보려 마음 먹는다면 생각보다 많은 정보 더미를 얻을 수야 있겠습니다만, 그것은 말 그대로 건초에서 바늘 찾기입니다. 인터넷만 뒤져본다고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 정보들은 누군가의 하드디스크에, 어딘가의 클라우드 서버에, 때로는 오직 인쇄된 문서로만 존재하니까요. 그리고 아마, 가장 중요한 정보들은 수많은 게임 디자이너들이 '내가 이 삽질을 다시 하나 봐라!' 하고 결심하는 그 순간의 뇌리에만 존재할 겁니다. 빠르게 변하는 현대 사회 중에도 최고의 속도를 자랑하는 이 업계에서는, 분명 많은 유저에게 재미를 주던 검증된 게임 매커니즘도 불과 몇 년 사이에 닳고 닳아 진부한 것이 되기 일쑤입니다. 또한 잘 만들어진 게임일수록 그 안의 모든 시스템이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어, 몇 개의 디자인 장치를 떼어내 다른 게임에 갖다 붙인다 해서 성공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습니다. 결국 이 모든 일은 게임 디자이너들에게 끊임없이 공부할 것을 요구합니다. 무얼 공부해야 할지,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는 사실 막막한 상황에서 말입니다. Game Design Forum은 그런 상황에 대한 하나의 방법론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곳에서 게임 디자인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내용을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멋진 게임 디자인 자료들을 찾아내어 공유하고 싶습니다. 자기만의 디자인 노하우나 경험담이 있다면 서로 나누고 싶습니다. 딱히 정답을 찾아내진 못하더라도, 서로 대화를 나누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배우는 뭔가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일을 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입니다. 그래서 이 곳은 무엇보다 "게임 디자인"에 대해 토론하고 대화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와 비슷한 취지로 만들어졌던 많은 커뮤니티들이 결국 게임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에서 게임 개발 전반, 산업 전반에 관한 이야기로 옮겨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게임 디자인 역시 게임 개발의 일부인 이상 그런 화제들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일단 이 곳에서 활동하시는 여러분께서 "GDF는 게임 디자인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곳" 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지해 주신다면 이 곳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일은 없지 않을까 합니다. 언제나 그 점 기억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켜주세요 – GDF 사용 규칙 이 포럼을 사용하기 위해 숙지하고, 지켜주셔야 할 규칙들입니다.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가능한한 최소화하려 노력했는데도 이정도네요. 
      이 규칙들을 의도적으로 또는 과하게 어겼다고 판단되면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도 있습니다. 
      잘 지켜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게시판의 용도를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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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댓말을 기본으로 하며, 서로 아는 사이라 해도 반말의 사용을 자제해 주세요. (잡담 게시판 예외)
      물론 외부의 글을 옮겨오는 등의 경우에 불가피하게 평어체로 작성된 글은 무방합니다.   3. '포럼처럼' 사용해주세요.
      이곳이 다른 게시판이 아니라 굳이 '포럼' 의 형태를 취하는 이유는, 포럼의 기능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음과 같은 내용들을 염두에 두시면 됩니다.
      하나의 이슈에 얽힌 이야기는 하나의 글타래로만 다룹니다. 
      새로운 글타래를 매번 새로 만드실 필요가 없습니다. 꼭 댓글 형태로 달아주세요. 
      댓글을 아주아주 길게 달 수도 있으니 부담없이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새 글타래를 만들기 전에 검색을 해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이 사항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강제로 게시물이 이동/삭제될 수 있습니다. 유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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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 게임은 스토리를 가져야만 하는가? - 서사와 플레이의 융합

3 posts in this topic

Voosco 님이 작성하셨던 포스팅의 아카이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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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은 스토리를 가져야만 하는가?
서사와 플레이의 융합

얼마전 잠깐 들여다보았던 에릭 짐머만의 어떤 글에 따르면 게임을 한 가지로 규정하려는 시도는 위험한데, 이런 시도가 게임이 가져야 할 다양성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포괄적으로는 그의 이런 입장에 동의하는 관점에서 아래의 글은 ‘게임을 한 가지로 규정하려는’ 시도이므로 위험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게임에 대해 갖는 각각의 관점을 좀더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스스로의 생각을 주고받는 것도 꽤 중요하다고 봅니다. 짐머만의 글은 ‘포괄적인 관점에서’ 맞는 말이긴 하지만, 실용적이 되려면 좀더 구체적인 부분까지 내려가봐야 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한쪽으로 꽤 치우친 듯 보이는 글을 하나 물어와봤습니다. 짐머만이라면 이 글을 아마도 '선택 근본주의자의 글' 이라고 부를 것 같군요. 얼마전 가마수트라를 통해 공개된 GDM 과월호 중 2013년 2월호에 실려있던 글입니다.

원문주소 : 
http://twvideo01.ubm-us.net/o1/vault/GD_Mag_Archives/GDM_February_2013.pdf
파일 상의 위치 60p ~ 62p 
책 에서의 위치 58p ~ 60p

스토리와 게임은 일종의 불안정한 결혼생활과 같다. 디자이너들은 자기가 써놓은 스토리를 게임에 구겨넣음으로써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이미 결정된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서사의 흐름을 따라가다가 마찬가지로 이미 결정된 엔딩을 보도록 만들어놓았다. 그러나 플레이어들은 게임이 바로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 때문에 게임으로 몰려들었다 ; 게임 경험은 플레이어가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회이지, 디자이너가 쓴 책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소설에 스스로를 종속시키기 위함이 아니다. 

이 문제의 뿌리에는 거의 신학적이기까지 한 딜레마가 존재한다. 플레이어의 선택이 실질적인 의미를 갖는다면 디자이너들은 자기들이 하고픈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 게임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상호작용성이라면, 디자이너가 게임에 구겨넣은 줄거리의 고정된 요소들은 플레이어로부터 게임의 가장 중요한 요소를 앗아가버린다. 다른 말로 하자면, 게임에 스포일러가 가능할 경우 그걸 아직도 게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좀더 명확히 말하자면, 테트리스와 같이 고도로 단순화된 몇몇 예외적 게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게임들이 이야기 요소로부터 덕을 본다 : 흥미로운 배경설정, 여러 독특한 분위기, 기억할만한 캐릭터, 몰입적 대화, 극적 갈등, 기타등등. 최고의 게임들은 다른 매체와 경쟁하기에 손색이 없는 캐릭터와 설정을 가지고 있다 – 포탈의 글라도스 또는 바이오쇼크의 랩쳐를 떠올려보라. 

그러나, 게임의 실질적 서사 – 줄거리를 결정하는 일련의 이벤트들 – 은 게임의 본질적 상호작용성과 융화시키기가 극도로 어려운 요소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게임의 서사는 책이나 영화에서처럼 다른 모든 요소들의 중심에 놓인 핵심 요소가 될 수 없다. 

시드 마이어가 서사의 가능성들에 흠뻑 젖은 게임 PIRATES!에 어떻게 스토리 요소를 넣었는지 생각해보자. 시드 마이어는 고정된 줄거리 요소와 이미 결정된 엔딩이 수반되는 단일한 모험담 대신, 전통적인 해적 이야기의 이런저런 요소들로 게임을 가득 채웠다. 플레이어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 오랜동안 잃어버렸던 여동생을 찾기도, 사악한 스페인놈과 결투를 벌이기도, 반역폭동에서 살아남기도,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기도, 감옥에서 탈출하기도, 총독의 딸에게 구애하기도 한다. 은퇴에 즈음해서 게임은 플레이어의 해적 인생에서 주목할만한 일들을 보여주며 그 흥망성쇠를 연대기순으로 보여준다. 단일한 줄거리로 이루어진 게임들이 다른 매체의 유사한 작가적 업적들과 비교되는 고통을 겪는 동안, 이 이벤트들은 플레이어에게 친밀감에 바탕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모든 게임들이 능동적 스토리 생성기에 잘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어떤 테마와 규칙들은 고정된 배경 하에서 다루는 것이 최고이다. 영웅은 베어버릴 사악한 마법사가 필요하다. 병사는 맞서 싸울 적군이 필요하다. 배관공은 구출할 공주가 필요하다. 해결책은 줄거리의 핵심 요소를 능숙하게 다루어, 모든걸 휘두르기보다는 제안하는 것이다. 플레이어로 하여금 세계를 탐험하고 마지막 이야기를 스스로의 머릿 속에서 만들어 내게 하라. 

인용

“롤링 스톤즈는 가사가 이해가 어려울 정도로 축약된 경우에 가장 영감을 준다는 점을 확인해주었다” – 폴 에반스 (Paul Evans), 롤링 스톤즈 앨범 가이드


실제로 게임에서 서사의 역할은 음악에서 가사의 역할과 유사하다. 노래에 덧붙은 단어들은 청자의 상상력에 일정한 공간을 남겨주면서도 악보에 맥락과 분위기를 제공한다. 사실 가사는 종종 녹음 과정에서 알아들을 수 없게 되어버리며, 이는 그 가사가 담은 의미를 고의적으로 흐릿하게 만들어버린다. 작가는 소설에서 텍스트를 결코 이런 방식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좀더 파보자면, 사람들은 종종 외국어로 된 노래를 즐기곤 한다 – 그들이 가사를 이해할 수 없음에도 말이다. 그러나 책의 독자들은 결코 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된 책을 집어드는 법이 없다. 가사는 결코 핵심적 역할을 하지 않는다; 위대한 노래들은 청자들을 위한 공간 (종종 아주 큰 공간) 을 남겨놓는다. 그리고 물론, 게임의 서사 또한 플레이어들을 위한 공간을 남겨두어야 한다. 

LIMBO를 생각해보라. 이 게임은 최소한의 오디오와 단색 톤 등 그 분위기로 유명한 퍼즐 플랫포머이다. 게임의 스토리는 한 소년이 그의 잃어버린 여동생을 찾는다는 극히 원초적인 퀘스트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게임이 진행되면서, 의문에 대한 해답보다는 더 많은 의문들이 생겨난다. 왜 이 소년은 어둡고 신비스러운 숲 속에서 여동생을 찾는가, 왜 괴물 거미가 소년을 쫓는가, 그를 공격하려는 아이들은 누구인가? LIMBO의 서사는 완전히 선형적이며, 줄거리나 대화, 그리고 대답 등 여러 전통적 서사 양식을 결여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플레이어에 의해 스토리가 쓰여지는 것이다. 

또다른 예시는 여기저기서 끌어모은 병사들로 만든 부대가 가상의 남미 도시인 누에보스 아이레스 (Nuevos Aires)에서 좀비 아포칼립스를 막는다는 내용의 마이크로RTS ATOM ZOMBIE SMASHER이다. 이 게임은 정신나간 삽화들로 가득한데 [“에스포지토가 결승골을 넣고 1분 후, 그는 산채로 먹혔습니다”] 시민들이 맹공을 어떻게 다루는지 보여준다. 이 게임의 에필로그에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유명한 연설인 ‘군산복합체’를 배경으로 사이보그 엘 프레지단테 (El Presidente)와 AK47이 열리는 나무가 등장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기괴한 서사의 결정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ATOM ZOMBIE SMASHER가 전통적인 방식의, 통조림에 갇힌 서사가 없이도 세계관의 느낌을 잘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말한 삽화들은 사실 캠페인 중간에 플레이어의 상상력의 간극을 메워넣기 위해 무작위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 게임의 디자이너인 브렌든 청 (Brendon Chung)은 “정보들을 한데 모아 꿰뚫어 보는 일은 재미있어요. 이 게임이 당신을 신뢰하고 존경한다는 것을 느끼는건 만족스러운 일이죠.” 이런 효과는 아마도 주류 플레이어들에게는 조금 거슬리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Atom Zombie Smasher는 평탄한 복도를 지나며 총을 쏘는 FPS나 과장되고 무거운 대화로 가득한 RPG보다 훨씬 더 열려있고 살아있다는 느낌을 준다. 고정된 줄거리는 플레이어 몰입의 적이다. 

선택의 질문
비디오 게임에 서사를 도입하는데 있어 가장 아쉬운 측면은, 상호작용적 픽션의 가능성이다. 상호작용적 픽션 속에서 플레이어는 전통적 스토리와는 다르게 스스로 큰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이 가능성은 현실화되었던 적이 없다. 플레이어들의 선택은 대부분 사전에 정해진 몇 가지 보기들 중에서 선택하는 정도로 제한된다. 하나 이상의 엔딩이 존재한다하더라도, 결과가 제한되어 있다면 그건은 상호작용성의 정도가 다를 뿐이지, 전혀 다른 범주의 상호작용성을 제공한다고 볼 수는 없다. 

제작비의 증가에 따라, 개발자들은 플레이어가 플레이 해볼지 확실하지 않은 요소까지 만드는 리스크를 부담스러워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상호작용적 스토리라인은 몇몇 특정한 키포인트와 반드시 동기화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스타워즈 구공화국의 기사들 (Knights of the Old Republic)이 이 문제를 잘 보여준다. 플레이어는 선과 악의 어느 쪽 길이든 갈 수 있지만, 두 길은 플레이어를 같은 장소로 인도한다 ; 플레이어는 악당인 다스 말락 (Darth Malak)을 퇴치되거나 그가 하려는 일을 중단시켜야 한다. (선의 길) 또는 그의 지위를 찬탈해야 한다 (악의 길) 두 길은 완전히 다른 윤리적 방향성을 취하지만, 어느쪽을 택하든 말락의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이런식의 고정된 줄거리는 많은 플레이어들에게 거슬리는 단절을 제공한다. 그들은 아마도 수십시간을 RPG 하나를 플레이하는데 보냈겠지만, 그럼에도 그들 자신의 이익이나 선택은 아무것도 반영되지 않았기에 스토리에 관련해서 남는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사람들이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이유는 그 이야기가 인간에 대해 갖는 의미를 공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쓰는 목적이 그렇다면, 이는 게임의 맥락에서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대부분의 이야기의 핵심 요소는 캐릭터들에 의해 내려지는 결정들이다 ; 게임의 핵심 요소는 플레이어들에 의해 내려지는 결정이다. 그렇다면 게임을 의미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플레이어들 자신의 결정이어야만 한다. 대체 어떤 게임이 정해진 이야기를 들려주면서도 플레이어의 선택이 갖는 중요성도 유지할 수 있단 말인가? 

액션RPG인 바스티온(Bastion)은 이 딜레마에 이의를 제기하는데 성공한다.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이 세계를 산산조각으로 부숴버렸던 신비한 ‘재앙’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게임을 진행함에 따라 플레이어는 재앙을 초래한 무기가 왜 만들어졌으며, 시동되었을 때 뭐가 잘못되었었는지를 배워간다. 게임의 결말부에서, 플레이어는 시간을 되돌림으로써 아마도 재앙을 피할 수 있을 선택을 할지 아니면 재앙 후 살아남은 이들과 함께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 새로이 시작하는 선택을 할지 골라야 한다. 

이 결정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결정을 내린 이후에 벌어진 일들에 있다 :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 게임은 플레이어의 선택을 반영하는 한 장의 그림을 보여주면서 그냥 끝나버린다. 디자이너들은 플레이어에게 이 결정을 반영하는 실질적 에이전시를 제공하는 척 하지 않는다. 대신에 그 선택은 거의 사색적인, 플레이어 본성의 단순한 반영이 된다. 당신은 자신의 최대의 실수를 되돌리겠습니까, 아니면 새로운 이들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겠습니까?

인용

”기도의 기능은 신에게 닿으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기도자 자신의 본성을 바꾸려는데 가깝다” – Soren Kierkegaard”


바스티온에서 플레이어는 디자이너가 생각한 결말을 목격하지 않으며, 선택을 내리는 행동들을 통해 배움을 얻는다. 워킹데드 (Walking Dead)에서, 디자이너들은 플로이어 본인이 내린 결정을 다른 플레이어들이 내린 결정과 비교하여 피드백을 제공함으로써 플레이어의 선택을 강조한다. 이는 포괄적인 사회 전체가 내린 결정과 자신의 결정이 배치되는지 일치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플레이어 스스로의 인격을 밝히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디자이너가 내린 줄거리상의 결정들에만 집중하는 게임은 게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플레이어라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다. 스토리의 깊이나 영향력과는 무관하게 게임에 스토리를 넣으려 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상 목발이라고 볼 수 있다. 쉬운 탈출구이지만 우리 매체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이다. 게임은 플레이어들에게 여지를 남겨줘야 한다. 비단 규칙과 매커니즘, 시스템에서 뿐 아니라, 스토리에서도 또한 그러하다.

- 글쓴이 소개 –
소렌 존슨 (Soren Johnson) 은 문명3의 공동 디자이너이자 문명4의 리드 디자이너이다. 그는 GDC 자문위원회의 회원이기도 하다. 게임 디자인에 대한 그의 생각들은 http://www.designer-notes.com 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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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인생과 게임의 유사성을 "자의적 행위 체감"이라고 보는 편입니다.
성장과정에서의 여러 경험들을 통해 운명론자이면서 다신론자가 되다보니, 제가 생각하는 것과 가장 가까운 운명론이 인도식 운명론이더라고요.

예전에 류시화 시인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이라는 책에 소개된 일화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인용

 

예언가가 말했다.

"그대는 내년에 부친을 잃을 것이고, 내후년엔 결혼을 해서 5년 뒤에 첫 아들을 얻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점괘는 하나도 맞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 부친은 이미 10년 전에 돌아가셨고, 나도 진작 결혼을 해서 첫 아들이 뛰어다닐 나이가 됐기 때문이다.

내가 사기꾼이라고 소리치며 돈을 돌려달라고 하자 예언가는 말했다.

"내 점괘가 틀렸다면 그대는 지금까지 자신의 운명에 역행하는 삶을 살아온 것이다."

 

다시 말해, 운명이란 일종의 인생 가이드 같은 존재고, 그대로 살지 안살지는 개개인의 선택에 따라 각기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흔히 샌드박스형 게임에 메인 스토리 라인을 넣을 때, "이걸 해야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니 멋대로 아무거나 하면서 살아도 별 지장은 없어."와 같은 식이 이와 같은 구조가 아닐까 합니다.

자의적 행위 체감이란 결국, 내 뜻대로 모든 걸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미리 정해진 시나리오대로 흘러가고 있었다는 의미인데요, 단단한 스토리라인과 네러티브 구성으로 플레이어가 자신의 의지로 게임을 진행한다는 느낌이 아닌, 누군가가 시키는대로 끌려간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게임이 가진 자발적인 컨텐츠 참여 의지를 해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포럼의 앞 부분에서 플레이어 자신이 대단한 존재인 것처럼 "속이는" 기술들에 대해 이야기 된 것처럼, 서사 역시 마찬가지로 결국은 디자이너의 의도대로 플레이어는 흘러가게 되지만, 그것을 마치 자신의 선택들로 이뤄진 결과를 보는 것처럼 "속이는" 기술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게임이 가지는 영화와 다른 큰 특징이 바로 이 상호작용인데, 이를 통해 단순한 선형 스토리 구성일지라도 플레이어가 세계를 체감하는 것은 영화보다 훨씬 크게 느껴지는 것은 분명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어디까지나 상호작용이 된다는 자체에서 오는, 일종의 매체 자체가 주는 효과라고 보는 입장이라 이를 "다른 사람이 쓴 이야기를 체험하는" 1차원적인 게임이라고 봤을 때, 스토리 자체를 자신이 생성하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기술이야말로 "내가 써내려가는 내 이야기"라는 다차원적인 게임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게임은 스토리와 엔딩이 있어야지! 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제 머릿 속에는 이런 의문이 들더라고요.

"인생에는 엔딩도 정해진 스토리 라인도 없지만, 사람들이 각자의 삶에 몰입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토리 자체가 불필요하다고 읽힐까 노파심에 첨언하자면, 단단한 스토리라인보다 부드러운 스토리라인과 플레이어들이 채울 여지를 두는 쪽이, 게임이라는 매체가 가진 장점을 가장 잘 활용하는 방안이 아닐까.로 정리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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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oocean 님이 작성하셨던 리플라이의 아카이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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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의 의견과 비슷합니다. 투더문처럼 애초에 게임 형식을 빌린 드라마를 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면 인터랙션 가능한 매체임을 고려해 거기 어울리는 스토리 전달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제작비를 조금 덜 걱정한다면 윙커맨더 3이나 4 같은 형식도 가능할 겁니다. (서기 2013년에 상업게임이 시도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만.)

좀더 거칠게 이야기하면 제 기준에서 투더문과 모던워페어 사이에 별 차이를 못 느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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